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 -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 지음, 최성애 엮음 / 문예춘추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 전기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자서전도 마찬가지. 그나마 평전류는 지은이의 관점이 상당히 반영되긴 하지만, 사료와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지기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확보 되었으리라 믿고 보지만, 자서전은 백퍼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왠지 찝찝한 느낌이랄까. 하긴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자신만큼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또 그만큼 의도하지 않은 기억의 왜곡이란 함정에 빠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암튼, 지인의 선물로 읽게 된 로자 파크스의 자서전.

 

로자 파크스. 다른 책에서 몇 번 봤던 낯익은 이름이긴 했다.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기사의 요청을 거부한 흑인 여자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고마운 지인 덕분에 그녀의 삶을 조금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분리주의 법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 내고, 흑인 인권 운동의 도화선이 된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 답지 않게, 시종일관 담담한 톤으로 이야기 하는 그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달까. 

 

난 그냥 막연히 1955년 그 날, 그 버스 안에서의, 한 평범한 흑인 여인의 자리 양보 거부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을거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흑인 여인은 그냥 평범한 흑인 여인도 아니었고, 본인은 소송을 염두에 둔 계획된 거부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긴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건 그것은 우발적 결정 이상의 오랜동안의 준비가 현실화된 사건 이었다. 

 

흑인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할아버지와, 어떻게 해서든 딸을 교육시키려 했던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당시의 흑인 여성답지 않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엘리트였고, 또한 흑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조직에서 이미 활동 중이던 남편과 함께, 그 자신 조직에서 간사 활동을 하고 있던, 소위 깨인 환경 속의 배우고 행동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로자 파크스 자신은, 버스에서의 그 한 순간의 결정이, 흑인들의 계속된 양보와 부당한 대우에 지치고 신물이 났기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 양보 거부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소송 결정이라는 그녀의 선택이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 불러올 엄청난 결과, 즉 직장을 잃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다른 주로 피해갈 정도까지의 선택임을 알고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은,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교육과 가족들의 지지, 그녀 스스로의 배움과 노력, 활동을 통한 깨어남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여기서 느끼는 것 한 가지. 역시 교육의 힘은 대단하구나.

 

그리고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흑백 분리법이 위헌 판결을 받은 결정적 이유가 일년여에 걸친 버스 보이콧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버스 보이콧 운동의 성공 요인이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기독교의 조직력을 이용한 홍보와 지원등도 인상적이었지만, 인간의 인권을 결정하는 문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결국 자본의 논리, '돈'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몽고메리 버스 회사의 주 고객이 흑인들이 아니었고, 그들의 보이콧 운동이 버스 회사들의 경영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지 않았다면 과연 백인들이 낑꼬나 했을까? 돈의 힘이 정의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다, 나는 지쳐있었다. 백인에게 끝없이 양보하고 굴복하는 것에 철저히 신물이 나 있었다. 운전기사는 내가 아직도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일어설 것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일어서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당장 경찰을 부를테요," 내가 답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 이 부분을 읽을 때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다. 마치 한 소설의 다른 부분을 읽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 바틀비도 그랬을 것 같다. 부당하게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 작게는 보스, 회사 조직, 나아가 사회 체제까지, 자신을 버리게끔 강요당하고, 끝없이 양보하고 굴복하는 것에 철저히 신물이 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러고 싶지 않다'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야기 했던 것일게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시하게 받아 들여지는 세상의 시스템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왔다. 우리는 그들을 숨겨진 영웅들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영웅들은 한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책 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