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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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 혼전섹스 등 1960년대에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그러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똑 닮은 데이빗과 해리엇은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에 꼭 들어맞는 배경이 되어 줄 런던 교외의 대저택을 구입한다. 그들의 안전과 평안의 왕국에 다섯째 아이 벤이 찾이오기 전까지, 그들은 행복했고, 자신들의 꿈을 이룬 성취감에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괴물같은 아이 벤의 존재와 나아가 그런 아이를 잉태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당혹스럽고 언짢은 시선, 비난과 비판과 혐오에 의해 해리엇의 형이상학적 본질은 껍질처럼 벗겨져 나가고, 데이빗은 자아를 잃어버린 채, 자신이 한때 결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며, 불안과 공포속에 부부의 나머지 네 아이들 또한 상처 받은 희생양이 된다.  

 

벤이라는 작은 괴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 작품 전체에 스며있는 불쾌한 으스스함, 모성애와 공포 사이에서 히스테리컬 해지는 해리엇의 심리적 갈등,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되는 부부관계와 가족의 해체가 짧은 분량속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잘 그려져 있다.

 

만약 헤리엇이 시설에서 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인간의 죽음으로 나머지 여섯 명의 행복이 보장될 수 있다면, 그래 어차피 벤이 죽지 않았어도,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란 불가능해 보이고, 가족들의 행복 뿐 아니라 사회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사회악으로 자라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차리리 벤을 죽도록 방치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누가 한 인간의 생명과 여섯 명의 행복의 무게를 재고, 어느 것이 더 무겁다 결론지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도록, 해리엇을 비난할 수도, 그렇다고 지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섯째 아이, 벤은 결국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한 가족 뿐 아니라, 우리 사회 혹은 나아가 우리 자신의 내면에도 웅크리고 있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이고 어둡고 낯선 존재의 "있음"과 그것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잘 드러낸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해리엇과 엄마의 대화.

 

"벤을 보면 생각하게 되요, 이 지상에서 한 때 살았던 모든 다른 사람들, 그들이 어딘가 우리 내부에도 틀림없이 있다고요" "폭 하고 솟아오르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지, 하지만 그럴 때 우린 그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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