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데이라이트 잭 런던 걸작선 2
잭 런던 지음, 정주연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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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잭 런던 걸작선 세 작품 중, 제일 못하다. 물론 이 작품이 100년전에 씌어진 것을 감안하면 당시엔 아마 어마무시하게 재밌으면서 나름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도 담긴 꽤 훌륭한 작품이었으라 짐작은 되나, 한 야망남의 너무나 드라마틱한 성공과 사랑 그리고 체제 비판까지 살짝 얹어주는 두 마리 토끼를 어설프게 잡으려 한 이런 류의 이야기에 적잖이 노출되어 온 나에겐 -물론 이런 작품이 내가 이제껏 접한 이런 저런 스토리들의 조상격이긴 하겠지-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여졌건간에, 어쨌든 그 이름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한낮의 햇빛같은 정열의 사나이가 있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에 "판"에 대한 동물적 감각까지 갖춘 그, 세상엔 뺏는 자와 뺏기는 자 두 부류만 있을 뿐이며, 자신은 뺏기지 않기 위해 뺏는 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돈을 쫓지만, 의외로 그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앞치마 두른 여자, 그리고 그 앞치마 두른 여자와의사랑이다. 그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헤쳐왔던 온갖 고난과 도전의 신성한 본질도 으례 그렇듯, 자본주의의 거대한 게임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퇴색되고, 그러던 중, 오! 얼마나 딱 들어맞는 등장인가,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으니~~ 

 

솔직히 나는 이 속기사의 캐릭터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고 모순적이라 공감하기 힘들었다. 자본가의 상징, 천만장자 데이라이트를, 노동을 통한 현물의 실질적 생산없이 그저 일차 생산자에 기생해 이윤을 취한다는 이유로 졸라 비판하는가 하면, 사랑하지만 이미 돈의 노예가 된 그의 전부를 가질 수 없기에 결혼은 할 수 없다느니 온갖 고상을 떨어가며 밀당을 해 그의 몸을 바싹 달궈 놓는다 - 아 이 여자, 정말 여우다. 모름지기 여자는 이래야 하는 법이거늘...에고고- 그럼, 그런 더러운 자본가가 사심을 품고 비정상적으로 꼬박꼬박 올려주는 월급 받으며, 장작도 아니고 우유도 아닌, 그 자본가의 이윤 추구에 일조하는 타이핑 서비스를 제공하며 살아가는 지는 어쩔건데? 정말 그의 돈이 그렇게 싫고, 정말 그가 모든 것을 잃기를 바랬다면, 그가 노동자에 기생해 -물론 그는 노동자를 약탈한 약탈자를 다시 약탈한다는 나름의 정의와 명분이 있긴 하지만- 벌어들인 돈으로 장만한 그 거대한 목장에서 평화롭게 결혼 생활을 즐기는 건 또 뭔데? 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야박한 건가? 

 

거기다 또, 모든 걸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자와의 전원 생활을 택한 이 현명한 남자는 운도 또 어찌 그리 좋은지, 다 버리고 들어간 목장이 알고 보니 금밭이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암.. 주인공은 끝까지 멋있어야지. 한 점 유혹 굳세게 물리치고 금밭일랑 나무심어 꼭꼭 묻어버리자 하니. 그것도 마누라한텐 비밀로 한 채. 

 

이 쯤 써놓고 보면 꼭 인기 있을 법한 드라마 시나리오 같지 않은가. 주인공은 최수종 하희라 쯤 되면 딱이겠다고 나름 캐스팅도 해본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에 주제는 뻔하다. 사랑은, 그리고 자신에 충실한 삶은, 억만금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것. 그게 잭 런던이 막판에 결론 내린 인생이란 게임의 법칙이었나 보다고 생각해 본다. 

 

데이라이트가 결정적으로 맘을 바꾸게 되는 그 장면 만큼은, 사소했지만 왠지 작품의 전체적 어설픔 속에 나름 인상 깊었다. 죽음의 순간도 이기고 돌아온 그 누구보다 강한 사나이었던 자신이 팔씨름에서 졌을 때 그가 받았을 충격, 이 세상의 모든 게임에서 이겨온 그가 진 단 하나의 작은 게임.

 

누구에게나 삶의 가치관을 바꾸게 되는, 작지만 짧고 강한 한 방의 순간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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