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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탁석산 지음 / 책세상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고, 그 막연함을 떨쳐버리고 뭔가 속 시원한 답을 주리라 기대하며 이 책을 읽었건만, 책을 읽은 후에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 졌다. 어쩌면 '한국의 정체성'을 이 짧은 분량의 책 한 권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안일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을 말하자면 답보다는, 한국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 던짐 자체가 의미있는 시간이었달까. 즉,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결과 보다는 그 주제를 탐구해 나가는 저자의 방식 자체가 아주 신선했다. 워낙 내가 비논리적 인간이고 특히나 깊이 있는 논문이나 철학 책 한 번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는지라 그런지 몰라도, 한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정체성의 정의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인식의 오류 하나 하나를 제껴가는 논리적 접근 방식이 매우 독특하게 다가왔다. 쓸데없는 소릴랑 집어 치우고 결론부터 말하시지라는 급한 성미가 불쑥 불쑥 올라오기도 했지만, 한국의 정체성이란 대명제 밑에 깔린 우리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많은 다른 개념들이 있고, 그 개념들을 살펴 보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란 사실에 조금은 압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철학이 어렵다고들 하는 건가? 하는 느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탁석산 특유의 글쓰기 방식이 새로웠고, 논리적 글쓰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었다. 정체성, 주체성, 보편성, 특수성 등 여러 가지 개념에 대한 고찰이 있는데, 솔직히 딱히 뭐라고 할 만큼 손에 잡히는 개념은 없고, 뜬금없지만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고유성에 대한 이중잣대에 대한 아래 부분이다.
*첵 접기
' 고유성이 다른 것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성을 뜻한다면, 우리는 고유성을 정체성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정체성이란 결국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우리가 고유성에 대해 이중 잣대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우리의 역사적 환경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시기, 다른 하나는 일본과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시기이다.........그런데 우리의 중국에 대한 태도와 일본에 대한 태도는 일관되지 않아 보인다. 즉 중국에서 받은 문물과 문화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했으므로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전해준 문물과 문화의 원류가 한국이므로 한국에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본이 은혜를 모른다고 비난한다.....즉 문화가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면, 그래서 한국이 일본에 감사를 강요한다면 한국도 중국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즉 이중의 잣대를 사용하고 있다.......둘째 경우......일본이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쨌든 일본을 통해 서구의 선진 문명이 한국에 전파되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물론 어떠한 감사의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일본에서 간헐적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발언이 나오면 즉각 망언이라고 규탄한다. 그럼 미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미국은 세계 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았고 또한 남한을 미국화 시켰다........즉 미국을 통해 우리는 세계 문화의 주퓨에 접하게 된 것이다. 일부의 반미 구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에 대해 호의적이다. 하지만 선진 문물을 전해준 일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개심을 갖고 있다. 그 차이가 식민 지배와 점령군 통치의 질적 차이에서 유래하는가? 도대체 양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카멜레온이 자신의 고유색을 갖는가? 환경에 따라 색을 달리하므로 카멜레온의 고유색을 정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지는 않지만 이중의 잣대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