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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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어두운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본 느낌 이랄까. 탄탄한 구성, 생생한 인물, 치밀한 배경 묘사, 딸리지 않는 뒷심, 높은 몰입도 정도로 이 작품의 미덕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범신의 평론대로, 징징거림이나 어설픈 감상으로 승부하려 들지 않는, 여작가답지 않은(?) 정공법이랄까. 하지만, 이 작품의 한계는 그냥 거기까지라는 거다. 러닝타임 내도록 한 눈 팔지 않도록 해주는 영화. 재미도 있으면서, 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언뜻 보기엔 뭔가 깊은 주제도 있는 듯한 영화. 그러나 마음의 울림 같은 것 까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영화. 

 

차라리 나는 이 작품이, 스릴러의 형태를 빌려 뭔가 심오한 얘기를 하려는 어설픈 시도대신 철처히 장르 소설로 씌여졌다면 오히려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영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그래서 그들의 캐릭터 자체는 생생하지만, 또 너무나 익숙해서 밋밋한 인물들 - 부와 명예 를 가졌지만, 오로지 자신의 세계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며 아내와 딸에게 군림하는 잔인한 사이코, 몸파는 홀어머니와 배다른 동생들이 속한 가난의 세계에서 탈출해, 33평 아파트로 대변되는 물질적 안정의 세계를 지키는데만 혈안인 악다구니 아내,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리는 무능한 가장, 특별한 개연성없이 주인공들에게 마냥 친절하기만 한 수호천사 이야기꾼 등 -은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 인물들이다.

 

인물은 그렇다치고, 이야기 전개 방식은?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장치한다든지 하는 것도 이젠 심드렁한 방식. 아버지의 혼령이 사고 후 매일 꿈 속에 나타나 주인공이 의식을 잃은 채 호수 주위를 헤메고 신발을 버린다든지 하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살인 후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 또, 소년이 죽은 아이의 혼령을 계속 보고, 익사의 순간에 혼령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고 믿는 부분 등은 일본과 미국의 스릴러에 한국적 초현실성을 어울리지 않게 버무린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삼대에 걸친 일관된 비극성을 억지로 만들려한 작위성이 느껴져 등장 인물들의 아픔과 고통에 진정 공감하기 힘들었다.  

 

등장인물 모두 아버지의 부재(은주), 폭력적 아버지(현수) 혹은 아버지의 무분별한 사랑(영제)이라는 뒤틀린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수장되는 대사건의 원인과, 7년의 밤을 거쳐 이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는 결론 또한 결국은 서원을 향한 현수와, 세령을 향한 영제의 비정상적 부성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너무도 빤한 전체 이야기의 틀이 다른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결정적 한계가 아닐까 한다. 

 

아마 별 기대 없이 읽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던지라 점수가 지나치게 짜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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