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잭 런던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역자처럼 나도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잭 런던이 조선에 왔었다니!' 하고 깜짝 놀랐다. <강철군화>를 읽고 이미 그의 팬이 된 상태에서, 조선에 대한 그의 르포르타쥬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잭 런던의 눈에 비친 조선과 조선 사람들은 어떠할지 정말로 궁금했다.

 

다행히 출판사의 우려대로 '기분나쁜 조선 관찰기'까지는 아니었으니, 조선 사람에 대한 욕(?) - 한국인은 기대도 맹렬함도 없고, 매가리가 없고 여성스럽다. 지구상의 어느 민족 중에서도 의지와 진취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비능률적인 민족이며 겁이 많다 등등등- 이 여기 저기 보이기는 했으나, 조선에 처음 온 우리 문화,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 없는 서양의 이방인, 그것도 종군 기자라고는 하지만, 잠시 머물고 지나간 일종의 관광객의 입장에서 본 피상적 관찰에 의한 것이라 이해할 만한 수준의 것이었고, 막상 그 욕들도 아주 터무니 없는 것만은 아니어서 인정할 부분도 있지 않나 싶다. 목숨을 걸고 황야의 불모지를 개척하며 나라를 세운 개척인의 피가 흐르는 미국인의 눈에, 내 땅, 내 집은 지킬 생각도 않고 산 속으로 줄행랑 치고서도 구경꺼리인 서양인을 보러 몇 십리 되는 길을 걸어올 에너지는 있는 조선인들,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않고 세월아 네월아하는 마부들이 이해될리 있었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겠느냐 말이다. 

 

그보다도 1904년 러일 전쟁 당시, 부산에 입국해서 인천 서울을 거쳐 평양 도착 압록강 전투를 겪고 중국으로 넘어가기까지 그가 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 일본의 점령으로 인해 오른 물가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상인들, 백성을 착취하고 개허세만 부리던 관료(양반) 계급,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금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위험한 통역관들 등등 - 과 러일 전쟁 당시의 분위기가 잘 그려져 있어, 마치 한 편의 시대극 + 전쟁 + 로드 무비를 보는 듯 했다.  

 

또 군데 군데 잭 런던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장들- '십리만 더 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대해서 책을 쓸 계획 (얼마나 이런 종류의 거짓말에 넌더리가 났을까? ㅋㅋ) 등등-이 소소한 재미를 더했으며 일본인과 일본 군인들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긍정적 그리고 비판적 시선들 - 일본군의 뛰어난 질서의식, 무기와 전쟁 수행 능력, 전쟁물자를 돈을 주고 사고, 여인들을 성폭행하거나 민간인을 수탈하지 않는 등의 신사적 태도, 마치 신에게 바치는 것과 같은 국가를 향한 광신적 애국, 서구의 앞선 기술은 모방했으나 윤리적 발전은 무시했기에 일본의 성공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 도 흥미로웠다. 특히 마지막에 언급된 잠자는 호랑이 중국의 잠재력을 예견한 부분에서는 잭 런던의 날카로움이 새삼 느껴졌다. 

 

제목대로, 잭 런던이 조선 사람을 엿보기만 한 것 같아 많이 아쉽긴 하나 나름 신선하고 재밌는 조선 관찰기라 함은 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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