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화사서설 범우문고 127
김수경 지음 / 범우사 / 1995년 1월
평점 :
품절


모리스 쿠랑 그는 과연 누구인지? 책을 다 읽은 후, 책 자체에 대한 감흥보다는 채 2년도 못 되는 짧은 체류의 경험으로, 이국의 사상과 언어, 도서, 문학에 대한 관찰 결과를 이 정도까지 세세하게 저술한 저자에 대한 놀라움에 압도되었달까. 저자는 혹시 화성인??? 

 

조선 뿐 아니라 중국 문화, 역사, 언어, 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파악 불가능한 조선 당대의 시대상이 외국인, 그것도 서양인에 의해 기술되었다는 것이 그저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이름도 못 들어본 수많은 책들의 인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특히 '조선의 언어' 부분에서, 이두를 포함한 한글, 한자에 대해 한국 사람인 나도 이해하기 힘든 구조적 비교 분석을 접하고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3,800여권에 달하는 조선 책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상세한 해설과 문화사적 논평을 한 책이 저자의 <조서 서지>이고 이 책은 그 서론 부분만을 따로 번역한 것이라 하니, 서론이 이럴진대 과연 <조선 서지> 본론은 어떠할지 짐작 가능하지 않은가. 도서관에 잘 정리된 책들을 편하게 열람한 것도 아니고, 책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도 이국의 책을 3,800여권이나 찾아, 읽고 연구하고 저술한 저자의 열정이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책과 학문에 대한 놀라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요즘 부쩍 책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드는 생각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역시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랴, 인간에게도 등급이 있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 물론 개개의 삶이 모두 나름대로 의미있다고 믿는다.-  

 

암튼, 외국인이 쓴 조선 문화사 책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국사나 국어책 혹은 한국인의 관점과는 좀 다른 무엇이었고 - 생각보다 전문적이라 오히려 당황스러웠지만 - 그 점에선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중국을 능가하고 유럽보다 앞선 인쇄술'이나 한글의 우수성 같은 지겨운 레파토리보다는, 한문의 침투로 인해 불모지가 되버린 조선 문학, 중국 사상의 노예임을 면치 못하고 오히려 중국보다 더 사변적으로 흘러버린 조선의 사상, 독창성도 없고 발전도 없는 정체된 조선의 학예 등 중국을 빼고서는 아무것도 이야기 되지 않는 우리 것의 빈약한 뿌리에 대한 인상이 더욱 강렬했으니까.  

 

잘 모르긴 해도 중국 사람들 자기 나라 역사와 문명에 자부심 갖는 거 충분히 그럴만 하다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도 없고, 구지 못난 점만 들추어 애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는 쿨한 자세도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