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역시 조지 오웰이구나!!!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젠체하거나 겉멋들지 않은 소박함속에 묻어나오는 진정성, 이론가이기 전에 실천하는 행동가로서의 면모, 진지한 문장 속에도 드러나는 유머감각. 작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적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언가가 조지 오웰에겐 확실히 있다. 그의 작품을 차례차례 읽으면서 어느덧 그는 나의 no.1 작가님이 되버렸으니. 

 

영화 '빌리 엘리엇'이나 '브래스트 오프' 에서 광부들의 이야기가 종종 다루어지는 것을 본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영국 역사상 탄광촌이 시사하는 바가 꽤 큰가 보다 짐작해 본다. 아마도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광부들이란 경제 생산과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충분히 그 댓가를 보상받지 못한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상징적 존재 같은 게 아니었을까. 

 

1부는 한 독서 클럽의 의뢰를 받아 조지 오웰이 직접 북부 탄광촌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작업하고 거주하면서 관찰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주거 문제, 비참한 실업 문제를 신파끼 쫙 뺀 사실적 필체로 기록했으며, 2부는 사회주의자로서, 파시즘에 대항하여 사회주의를 효과적으로 전파시키기 위한 전략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계급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중하층, 계급의식으로서는 상류층으로 태어난 자신의 성장 배경과 버마에서의 경찰 근무 경험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1930년대, 그것도 남의 나라 영국 광부들의 비참한 삶이라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화폐 개념과 빈약한 상상력만으로 그 고충을 생생하게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고, 명확히 기술되지 않은 조지 오웰의 모호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가 책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할 수 있겠으나, 웃기게도 이런 결점들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 강한 공감대가 2011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나에게 형성된다. 특히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그 스스로 사회주의 비판자가 되어 던지는 질문과 답변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예리한 분석력과 이해하기 쉬운 탁월한 해석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런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혹은 뒤늦게 돌리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후진성으로 받아들여야 할런지. 아님 조지 오웰의 천재성으로? 이 책에 씌어진 이야기는 우리와 꽤 다른 시대, 공간,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너무나 똑같이 닮아 있다. 특히 파시즘의 득세를 막기 위해 모든 좌파가 견해차는 잊어버리고 일단 단결할 필요가 있는 절박한 순간에 와 있으며 압제가 타도되기를 바라는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절대 엉뚱한 사람들과 제휴하는 위협은 없을 것이라는 부분에서, 며칠 전 민주당과 시민 연대의 통합 과정이 오버랩되면서 , 정말 기똥차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지 오웰의 책이 거의 1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과연 기쁜 일인가 슬픈 일인가.

 

*책 접기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없이 살기 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광부의 일이 더 없이 끔찍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필요함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가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잊듲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략- 당신도 나도.... 동성애자 시인도 캔터베리 대주교도 아무개 동지도 <유아를 위한 맑시즘>저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매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 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전쟁 이후로 시장은 제대로 못 벌고 못 먹는 사람들의 수요에 맞춰 적응해야만 했고, 그 결과 오늘날 사치품은 거의 대부분 생필품보다 저렴해졌다....3페니로 고기는 얼마 못사지만 피시 앤드 칩스는 충분히 살수 있다...단연 돋보이는 것은 모든 사치 중에서도 가장 값싼 도박이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 해도 당첨금에 1페니를 걸어봄으로써 며칠간의 희망을 살 수 있는 것이다.........아울러 배곯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퍼부어 주는 오늘날의 전기 과학이 빚어내는 진풍경도 가관이다. 이불이 없어 밤새 떨다가도 아침이면 공공 도서관에 가서 샌프란시스코나 싱가포르에서 전송한 뉴스를 읽는게 오늘날인 것이다. 영국에선 2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지만, 말 그대로 누구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먹는 것에서 생기는 결핍을 전기로 채우는 셈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전부 강탈당한 상당수의 노동 계급이 생활의 표피만을 누그러뜨리는 값싼 사치로 부분적인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후에 값싼 사치가 발달한 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피시 앤드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 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같은 것들이 혁명을 막은게 사실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계급 차별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것이 정말 없어지기를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그렇다면 그는 과연 정말 타도를 원할까? 확고부동한 압제에 맞서 싸우는 그를 붙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자신이 그것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이것이 감상주의의 불가피한 운명인 것이다. 그의 모든 견해는 현실을 최초로 맞닥뜨리자마자 정반대의 것으로 변해버린다. 이런식의 눅눅하고 설익은 위선은 모든 진보적 견해에서 발견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