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년 동안 수인 생활을 한 사람의 삶은, 그 죄질과 처벌의 정당성을 떠나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더구나 스무살 청년의 뜨거운 청춘으로부터 불혹에 이르는 긴 세월을 그에게서 앗아간 죄목이 억울한 시대의 억울한 산물이었다면? 나라면 아마 미쳐버렸을 것이다. 본인은 그렇다쳐도,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또 어땠을지. 그래, 아마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뭐라도 읽지 않고서는, 뭐라도 남기지 않고서는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편지는 편지 이상의 편지가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부모님께, 형제들과 형수님, 계수님께 보내진 그의 편지들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검증하고, 채찍질하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 사춘기 시절, 자신과 세상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로 부글거리는 뜨거운 심정을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나에게 있어 그 분출구이자 자신과 소통하는 통로는 일기가 아닌 편지였고, 편지를 쓰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가 정리되고, 그래서 그것이 결국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한 편지이자 발견이랄까. 물론 저자의 편지는 나의 얼치기 사춘기적 편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치열한 고통과 자기 수양의 산물로서 뜨겁고 또 차가운 통찰이겠지만 왠지 펜을 들어 편지를 써 내려갈 때 그의 느낌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자신에 대한 확인과 검증, 자신과의 싸움에서 정체되지 않고 발전해 가고자 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처절한 의지같은 것들.   

저자 아버지의 편지처럼 그의 글 또한 수식과 감상 등 일체의 낭비가 배제된 담담함 속에, 그의 사색의 주된 화두들인 인간, 실천, 연대, 나눔, 역사인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져 있으며, 맘 놓고 푹 쉴 수 있게 차라리 감기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할 정도의 엄격한 자기 관리, 나아가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변혁에 정진하는 그의 한결같음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덧붙여 말 못할 고통에도 불구하고 연대 속에 사랑의 진정한 실천을 또한 한결같이 행한 그의 가족들 또한 존경스럽다. 단지 그가 처했던, 물리적/역사적 상황들이 -엘리트 대학생, 학생 운동, 통혁당 사건, 실천하는 지성 등등- 나와 너무나 동떨어진 것들이라 충분히 몰입할 수 없었던 어느 정도의 괴리감이 아쉬울 뿐. 

거창하게 사색까지는 아니라도, 멍이라도 유유자적 때릴 수 없을 만큼 요즘 우리는 게임에, 인터넷에, SNS에 혹은 그 무언가에 너무 많이 정신이 팔려있다. 잠깐이라도 무언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혼자 조용히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책 접기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젊음이 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노가 원숙이, 소가 청신함이 되고 안되고는 그 연월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합니다.<중략>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경우에는 이 바라본다는 행위는 그를 알려는 태도가 못됩니다.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한편이 되어 백지 한 장이라도 맞들어보고 반대편이 되어 헐고 뜯고 싸워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흡사 냄새를 만지려 하고 바람을 동이려 드는 헛된 노력입니다. 대상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라보는 경우, 이 간격은 그냥 빈 공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선입관이나 풍문 등 믿을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지고, 이것들은 다시 어안 렌즈가 되어 대상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풍문이나 외형, 매스컴 등,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인식은 '고의'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무지'보다는 못한 진실과 자아의 상실입니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