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빠이인가? 박민규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박민규의 왕팬이 되버린 내가, 그의 신간이 나오자 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주문한 책. 무슨 장류도 아니건만 어쩌다 보니 일년이나 묵혔다가 읽게 된 책. 한글로 된 책이 무척이나 그리웠고 그래서 집에 오자 마자 젤 먼저 집어든 책. 그런데........앨범으로 치자면 track 1인가? <근처>를 읽은 후 바로 드는 생각 두 가지. 1.어라 단편집이었네 2. 이제 박민규와도 빠이빠이를 할 때가 온 것인가.  

책은 LP시절 더블 앨범에 대한 작가의 로망에 의거,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종의 속지 역할을 하는 일러스트레이션 + 각 단편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인 총평은 뭐랄까? '그냥 그렇다'에서 '조금 실망스럽'다 사이? 사실 2권을 읽기 시작했을 땐 살짝 지겹기까지 했으니까. 이럴리가 없는데. 읽는 내도록 그 이유를 생각했다. 일년 사이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이제 더 이상 박민규 코드(?)와는 맞지 않는 것일까? 기대가 너무 컸나? 아님, 첨부터 박민규는 그저 그런 작가였을까? 단지 뒤늦게 알아버린 것 뿐? 단편들이라서 임팩이 약한건가? 혹은 너무 익숙해져버린 그에게 이제 슬슬 싫증이 난겐가?  

작품 하나 하나, 일단 굉장히 심상적이다. 모든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특히 왠지 모르게 'mbc 베스트 극장'의 이미지는 너무 강렬했다 -물론 그 장르는 현대물에서 사극,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소재나 주제 또한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것들- 실직, 신용 불량, 그레이 로맨스, 자본주의의 병폐, 무기력한 샐러리맨, 과학 기술에 대한 맹신, 인간소외, 사회적 약자 등등등- 이지만, 동시에 문제는 뭐랄까, 모든 작품들이 다 어디선가 한 번 씩은 읽은 듯한, 한 번 씩은 본 듯한 것이며 -특히 SF적이고 퐌타지적인 작품들을 대할때, 무라카미 하루키, 잭 런던, 하인라인, 로알드 달 등의 외국 소설들과 난장이 남자가 거인 여인을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내용의 일본 만화, 영화 127시간등등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이 느낌은 뭐지? 박민규 자체도 그런 대가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적, 사회적 산물이기에?- 특히나 아쉬웠던 부분은, 그런 보편적 주제들을 가지고도 가슴 저 깊은 곳을 후벼파는 깊이감은 없었다는 것이다. 뭔가 어설프고, 엉성하달까. 물론 가벼운 재기 발랄함이 박민규의 매력 중 하나임을 간과할 순 없겠지만... 그때 그때 트렌드에 맞추어, 골고루 가볍게 터치만 한 느낌이랄까?  

쓰다보니 정리가 되는 듯. 박민규는 원래 그랬을 뿐이고, 내 안에 뭔가 조금 변했을 뿐이고, 그래서 그가 더 이상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일 뿐이고. 그러나 그가 주었던 설레임은 잊지 못할 뿐이고.   

*책 접기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