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생각했던 것 처럼 마냥 달콤하지많은 않은, 오히려 예상외의 잔혹성에 놀랐다. 영국판 흥부네 집인 찢어지게 가난한 찰리의 집과 대비되는 자기 딸 한 명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백명의 종업원을 시켜 땅콩 까는 일 대신 초콜릿 포장을 벗기게 하는 거부 버루카 솔트. 그들을 보고 있자니,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과, 자본가의 노동력 착취가 왠지 자연스레 떠오른다. 제조 기법을 빼내가는 직원들을 모두 내쫒고, 코코넛 열매를 미끼로 숲 속에 살고 있던, 순진한 움파룸파 사람들을 배에 실어 영국으로 데려와 초콜릿 공장의 노동자로 쓰기 시작했다는 윙카의 모습에선 비록 움파룸파 족의 얼굴색이 하얀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노예선에 실어 본국과 미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공급했던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나의 지나친 오버인가. 돈만 많고 어리석은 남자로 그려지는 인도의 왕자는, 인도의 향신료, 비단등을 찾아 헤매던 영국인들의 눈에 비친 인도 사람들의 모습과도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윙카의 초콜릿 공장에 초대받은 행운의 어린이는 모두 다섯 명인데, 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구제불능의 말썽쟁이들이다. 우걱우걱 먹어대기만 하는 엄청난 뚱보의 욕심쟁이, 껌을 하루종일 씹어대는 껌쟁이 소녀, 뭐든지 갖고 싶은건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부잣집 딸, 하루종일 티비만 보고 총싸움에만 관심있는 소년. 공장 견학 도중 이들은 차례로 한 명 씩 제거되는데, 그 제거되는 방식이 호러에 가깝다. 백개의 칼날이 납작납작 썰기도 하고 끓여버리기도 하고, 몸에서 즙을 짜내고, 쓰레기 소각로에 태워 버리려 하고, 조각으로 잘게 썰어 전송 하는데 가끔은 일부만 전송 되기도 해, 몸의 반만 나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하체보단 차라리 상체가 나오는게 낫겠다는 무시무시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부모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한데, 초콜릿 강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셔츠를 버릴까 두려워 구하기를 주저하거나 혹은 같이 진공관 속으로 빨려가는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아이의 나쁜 특성을 상징하는 네 명의 아이를 벌주고 아이를 망친 책임 당사자인 부모들을 풍자해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에게 재미와 함께 일종의 교훈(?)을 주려는 작가의 의도인 듯 하다. 빨리 결혼 했으면 찰리만한 아이가 있을 나이에다,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읽은 동화라 그런가. 껌 좀 씹고, 티비 좀 보고, 먹는 것 좀 밝힌다고 해서 그게 뭐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처벌될 일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물론 동화라는 장르의 특성 상 과장이라는 부분을 생각해야 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위 몇 가지만 제외하면, 초콜릿 공장의 내부 묘사와 거기서 생산되는 초콜릿과 과자들은, 정말로 이 세상 어딘가의 지하에 그런 공장이 있고, 언젠가는 그런 제품들이 생산되어 나왔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환상적이다. 특히 식사 코스가 들어있는 껌은 정말 최고다. 윙카 말대로, 설겆이 할 필요 없으니 환경 오염도 안 될테고 음식 준비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테고, 간단하게 껌만 씹으면 산해진미를 맛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맛 뿐 아니라 음식을 씹는 질감과 목넘김의 느낌까지 그대로 느낄 수 있다니 말이다.  

찰리는 삼 세번 도전 끝에 드디어 황금빛 초대장을 손에 넣었다. 마지막은 물론 길에서 주운 행운에 의한 것이라 찝찝하지만 말이다. 역시 인생은 삼세번인가. 나에게도 그런 마지막 행운이 오길 아이같은 마음으로 바래보는 뜬금없는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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