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무부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 파피용 이후론 다시는 베르베르의 작품을 안 읽겠다 다짐해 놓고선 또 옛 정이 무서운지라, 파라다이스를 펼쳤다. 혹시나 이번엔 개미와 타나타노트를 능가하는 작품이 될까 하는 기대를 품었으나 결론은 역시나. 이럴 줄 알았음 1권만 살껄, 2권까지 주문한 것도 후회되고. 이제 그도 시셋말로 한 물 간 건가. 하긴 다작을 감안하면, 아이디어의 고갈도 이해할 만 하다. 게다가 나처럼 그의 작품의 이런 저런 모티브 - 종의 기원, 유전자 변이, 똑똑한 여자 주인공(과학자), 벌(개미)의 군집사회의 이상화, 우주로의 탈출, 파리 로봇등- 에 이미 강한 내성인 생겨버린 독자는, 좀 더 쎄고 좀 더 새로운 한 방을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라다이스가 단편이고, 그의 말대로 단편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 했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적잖이 실망이다.  

best와 worst를 꼽으라면, 그나마 best는 <안개속의 살인>인데, 차라리 조잡한 미래편 보단 현실감 있는 과거편이 나았다. 자식을 죽여 쓰레기 봉투에 담아 강에 버리고도 아무런 죄책감 없는 창녀와 그 주위의 남자들, 남편이 친구와 바람 피우고 있다는 날조 편지를 보내는 편집증 안내원, 왜소증과 자신들은 다르다며 흥분하는 유랑 극단 출신 소인 여자 등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좋았고, 특히 비올레트 할머니와 이웃 피자크 할머니의 관계와 죽음, 그리고 무서운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는 왠지 모르게 굉장히 강한 이미지로 떠올라, 그 부분만 떼어내서 한 편의 영화 혹은 소설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worst는 <내일 여자들은>. 이유는 위에서 말한대로. 엉성하고 노골적이며, 이건 뭐 사골 세 네 번 우린 국물도 아니고 너무 우려 먹는다는 느낌이랄까. 마들렌의 남자친구는 어떻게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서 그들을 구해주고 죽어 버렸을까. 인류를 구하기 위해선 한 남자의 죽음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세계를 멸망시키는 미치광이 괴수는 왜 파키스탄 사람인가. 마들렌의 현실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레베카의 미래는 뭐 빽투더 퓨쳐와 나비효과의 짬뽕인가? 등등등 

양감독이 그랬단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그 작가의 오리지낼러티는 사라지는 거라고. 지금 베르베르를 향한 내 심정이 딱 그런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작가도 참 불쌍한 직업이다. 단물 쓴물 다 빨아 먹히고 나면, 마지막엔 별 시덥잖은 나 같은 독자로부터 이 따위 소리나 들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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