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리처드 F. 버턴 지음, 김원중.이명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그 유명한 아라비안 나이트. 사실 내가 사는 곳에선 책 보다 나이트 클럽으로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지었나 몰라도 작명 하나 기똥차다. 아름답고 균형 잡힌 몸매의 남녀들, 한 순간의 반함, 육체의 탐닉, 돈과 보석, 쉽게 잊혀질 하룻밤의 이야기. 아무튼 한 번도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는 천일야화의 이야기들을 샤갈의 그림(판화)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춤도 추고 부킹도 하는 셈.  

아라비안 나이트의 초기 사본은 800년대 초반의 것이라 하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0년전에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란 것도 인간의 탄생과 함께 오랫동안 몸 속에 저장된 본능이 아닐런지. 어쨌든, 우리는 모두 이야기에 목마르다. 나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 꾸며진 이야기, 실제 이야기. 매일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세헤라자드의 목숨 값일 만큼 왕을 사로잡은 이야기들은 도대체 얼마나 재밌고 매력적이었을까? 

천 년 전 이야기를 오늘의 가치 판단 기준과 논리성의 문제로 따지고 들지만 않는다면, 즉 마음을 비우고 그냥 이야기 자체만 즐기려 한다면, 충분히 재미있다.  얼굴도 몸매도 죽여주는 주인공 공주와 왕자들,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들, 금 은 보석, 전지 전능하신 알라, 이 네 가지 모티브가 끊임 없이 반복되어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통해 천 년 전 사람들의 사랑과, 돈, 신에 대한 가치관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사람을 새로 바꿔 버리고 그 새와 교접하는 마녀,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는 흑단마, 남편 몰래 젊은 미남자를 탐하는 아름답고 영리한 아내. 바다 공주와 육지 왕의 사랑, 어부 압둘라 앞에 펼쳐진 바다 세상과 바다 사람들의 풍속. 이 모든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샤갈의 몽환적 그림과 잘 어울리면서 서로의 신비감을 증폭시킨다.  

개인적으로, 이야기에서는 <어부 압둘라와 인어 압둘라>가 그림에서는 <세헤라자드의 밤>이 맘에 든다. 어부 압둘라에게 행운이 찾아올 때 까지 무작정 기다려 주는 빵집 압둘라, 그리고 빵집 압둘라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대신으로 임명하고, 어부 압둘라를 염려하여 사위로 삼는 왕 압둘라, 신을 섬기는 자세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어부 압둘라에게 이별을 고하는 인어 압둘라까지, 압둘라도 대변되는, 이슬람 교도들의 인생관과, 불화로 마무리되는 현실적인 결말, 무엇보다 신비하게 묘사된 바다 세상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상상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림에선, 이야기의 여왕 세헤라자드의 도도함과 자신감에 찬 얼굴, 그리고 그녀에게 아이처럼 눈 감고 기대고 있는 왕의 평화로운 모습이 좋았다.    

목숨이 걸린 것도 아닌데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미가 있건 없건, 자신의 이야기건 남의 이야기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가.  

*책 접기 

'자신에게 닥친 일을 슬퍼하면서 울었지만 모든 일을 비밀로 했습니다. 적이 기뻐 날뛰거나 친구가 마음 아파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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