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폴 오스터 이후로,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눈이 자동적으로 한 두 줄 건너 뛰어 읽어버릴 정도로, 이야기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 읽은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간만에 제대로 된 물건 하나 건졌다. 열편의 단편 모두 생생하고 싱싱하다. 게다가 재밌고 깊기까지 하다.     

그런데 따지고 들면, 이 작품에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요소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화려한 문체도, 세밀한 심리 묘사도, 매력적 인물도, 실타래처럼 얽힌 구성도, 특별한 배경도, 복잡한 반전도 없다. 그냥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인물들과,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서, 잔혹 환상 동화의 느낌이 묻어 나는 이유는 왜 일까? 눈 코 입은 평범한데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아주 매력적인 얼굴같다고나 할까. 뒤돌아 가만 생각해 보면,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고 묘한 얼굴.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순간 호흡이 멎고, 신경이 팽팽해지고, 침이 꼴깍 넘어가는 1-2초의 날카로운 긴장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그 자체로 재밌는 이야기, 그 속의 긴장과 공포, 복수의 통쾌함, 제꾀에 제가 넘어가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에 대한 통찰과 풍자. 이 모두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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