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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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작품 내용대로 1, 2, 3부로 나누어 정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왜냐면 각 부마다 이 소설에 대한 느낌, 해석이 달라졌으니까.  

1부 - 그저 가볍게 술술 읽혔다. 주정수 원장의 동상으로 표상되는, 배신과 불신으로 점철된 섬의 아픈 역사가 주가 되는 1부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뭐 실화에다 소설의 옷을 살짝 걸쳤을 뿐, 명성에 비해 너무 거저 먹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끊임없이 환기되는 '동상'의 이미지를 통해, 한 절대 강자(주정수)의 독선적 집념과 명예욕이 초래하는, 다수 약자(섬 사람들)의 부당한 고통과 착취, 뭐 이런 걸 이야기 하고 싶은건가 보다 하는 감만 살짝 잡은 정도였다. 

2부 - 그러나 조원장과 원생들의 개간 사업이 본격화 되는 2부 부턴 슬슬 힘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돌을 때려다 부어도 솟아날 기미가 없는 돌둑에 나도 같이 조갑증을 냈고, 태풍과 반복되는 자연 침하, 조원장과 섬 사람들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외부의 '배신'과 조원장 개인, 섬사람 개개인 내부에서 서서히 금가는 '불신'으로 나타나는 내부의 '배신'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집단 광기를 이해하려 애써야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번득하는 도식! 농지개간의  집념에 불타오르는 권총 찬 사나이, 조원장 = 개발 독재자 박정희, 조원장의 본심을 끊임없이 불신하는 실질적 조력자, 이상욱 = 정권 비판적인 그러나 대안없는, 결국 도피로 탈출구를 찾는 나약한 지식인, 배신의 쓰라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신과 광기의 집단, 섬사람들 = 일제,이승만, 박정희 의 지배하에, 생존을 위해 자신과 동료를 배신해야 했던 힘없는 국민이라는 너무 뻔한 도식 말이다. 결국, 시대 비판 소설이군. 그렇다면 간간이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해하기 힘든 생각과 행동들도, 위 도식에 짜맞추려는 작가의 애교섞인 억지 정도로 받아줄 수 있겠다 생각하며  

3부 - 3부로 넘어가 기나긴 이상욱의 편지를 읽으며 내린 결론은 이거다. 이 소설은, 집단 내에서 강자와 약자 사이에 형성되는 힘(권력)과 작동 논리, 인간 대 인간, 인간 내부의 상호 혹은 자기 불신과 배신, 치열한 투쟁 속에 드러나는 광기와 같은, 인간내부에 도사린 은밀하고 위험한 본성에 대한 작품이며, 이는 비단 어느 특정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태어날 때 씌여진 이 오래된 작품이 아직까지 사랑받는 이유겠지? 특히, 취하고 버릴 선택의 자유와, 변화가 전제된 천국만이 진정한 천국이라는 이상욱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1. 개간을 향한 조원장의 뜬금없고, 불분명한 동기 : 투철한 직업정신? 약자들에 대한 동정? 공명심? 타고난 승부욕과 집착? 처음 부터 끝까지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은 조원장은 도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였다. 나 또한 이상욱 처럼 끊임없이 그의 진짜 의도를 의심했으나 결국 작가는, 섬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끝에 가서 두리뭉실하게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란 것이, 어떻게 그렇게 한 순간 깊이 솟아날 수 있는 것인지. 자신의 목숨까지 내건 그 절대적 사랑이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어떠한 장치도, 배경도, 설명도 없다. 설사 사랑이라 치고 넘어간다 해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오직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 하나로, 그들의 피까지 불사하며 그렇게 무모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까?  

2. 섬 사람들의 탈출 방식 : 이상욱 이라면 또 모르겠다. 환자로서의 섬 사람과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섬 사람의 상징적 구분을 위해, 언제든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목숨을 걸고 바다를 헤엄쳐 탈출한다는 설정을 일반 환자들에게도 적용하기엔 좀 억지스럽지 않나? 

3. 기독교의 과다개입과 뻔한 결말 : 종교 소설도 아니고, 기독교적 서술이 과한 느낌이다. 결국 사랑이 정답이라는 뻔한 결말도 그렇다. 그게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설사 뻔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건가? 

4. 윤해원과 서미연의 결혼이라는 상투적 결말: 서미연의 본질은 미감아다. 그렇다면 정상인과 나병인과의 화해와 결합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받아 들이면 지나친 비약인가?  

5. 조원장과 섬 사람들의 믿음 형성 과정 : 작가는 절대 운명을 같이 할 수 있을 때에만 믿음이 생긴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절대 운명이란 것이 단지 조원장의 섬의로의 회귀만으로 간단하게 해결되고, 그로 해서 섬사람들의 믿음을 얻어가고 있다는 전개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 나는 뭔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을 생각했다. 조원장이 섬 사람들과 진정한 의미의 공동운명체가 되려면, 그도 결국 환자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의 생각을 깐깐하게 적용 하자면, 결국 환자와 비환자 - 나와 타자 혹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진정한 믿음과 화해는 결국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에 다다르지 않을까?   

6. 작가의 과잉친절 : 1970년대 소설이란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하겠지만, 작가는 조원장, 황노인, 이상욱의 입을 통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설명해 준다. 독자는 그저 따라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계몽소설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사소한 이런 몇 가지 점들을 제외하곤,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사유의 힘이 느껴지는 고전이라 할 만하다. 

*책 접기 

"운명을 같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절대의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못함이 곧 사랑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믿음이 없는 사랑을 행함은 사랑을 행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고 말입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 한, 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회의 질서란 우리가 흔히 믿고 있듯이 다중의 희망이나 기도 같은 것과는 일단 상관이 없이, 우선은 그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슬픈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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