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시각으로 전쟁 들여다 보기

카탈로니아 찬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요즘 부쩍 '전쟁'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느껴진다. 대통령은 전쟁도 불사하겠다 하고, 전쟁 드라마, 전쟁 영화도 봇물이다. 나로서는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어림짐작만 해 볼 뿐 진짜 전쟁이 어떤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책에 묘사된 전투 장면은 -스페인 민족성 탓인지 전쟁조차 느긋하며 인간적이다. 숨막히는 긴장감 같은 건 없다. 병사들은 하나 같이 어설프고, 죽자사자 적에게 달려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추위, 악취, 담배 부족이 더 고통스럽고, 조지 오웰은 전장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보다는 '웰컴 투 동막골'의 다소 몽환적인 전쟁 이미지를, 바르셀로나 시가전은 광주 항쟁을 떠올리게 했는데, 한국 전쟁(광주항쟁)이든 스페인 전쟁이든 사실, 이런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내가 느끼는 전쟁의 거의 전부인 것이다. 어쨌든 트렌드에 맞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 타이밍에 읽게 되었다. 소설은 아니고, 전쟁 회고록? 르뽀? 정도 되겠다. 스페인 내전의 복잡한 사정에 대한 관심도 배경 지식도 없었지만, 전쟁의 본질은 다 똑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국 전쟁과 광주 항쟁등을 겹쳐 떠올려 그랬는지, <사실>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담담한 전쟁 체험담을 따라가기가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먼저,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가족 국적 생계' 를 희생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조지 오웰을 포함한 수많은 외국인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짧았으나, 계급 대립 없는 평등 사회 실현의 가능성을 카탈로니아에서 맛 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다음으로 느낀 건, 전쟁의 오물 투성이 수면 아래 감추어진 본질이다. 1. 전쟁(내전)의 배후에는 정치/경제적 지원자가 있다. - 미국과 러시아가 남/북한을 지원했듯, 프랑코파는 독일과 이태리가, 연합 정부는 러시아가 그랬다- 2. 돈(실리)이 정치 이념보다 우위에 있다 -무기를 지원하는 러시아의 이익을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상식과 달리, 오히려 스페인의 혁명을 지연 시키려 한다.- 3.언론은 권력자의 편에서 본질을 왜곡 보도한다. - 스페인 언론은 공산주의자 편에서, 통일노동자당을 파시즘의 협력자, 트로추키주의자로 몰았고 국제 사회는 이를 진실로 받아들였다.- 4. 같은 노선내의 분열,대립,중상모략이 항상 있다. - 반파시즘 진영 내부에서도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등으로 분열되어 대립한다-  

전쟁 후, 인간 품위에 대한 믿음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 당시에는 지긋 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 되었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 목에 관통상을 당하고 가까스로 탈출한 후에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 이 책은 내게, 모든 면에서 따라 잡기 힘든 조지오웰에 대한 homage 같은 것으로 기억될 것 같다.   

* 책 접기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 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행기가 전쟁의 조건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다음에 큰 전쟁이 터질 때는 사상 유례가 없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몸에 총알 구멍이 난 후방의 애국자의 모습말이다." 

"장군과 사병, 농민과 의용군은 여전히 평등한 자격으로 만났다.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서로를 당신이나 동지로 불렀다. 고용주 계급도 없었고, 하인 계급도 없었고, 거지도 없었고, 창녀도 없었고, 변호사도 없었고, 사제도 없었고, 아첨도 없었고, 모자에 손을 대는 인사도 없었다. 나는 평등의 공기를 숨쉬고 있었다."  

"누구도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엇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줄 만큼은 지속되었다."  

"균형 감각을 유지하려면, 잘못이 전적으로 어느 한편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사실 모든 전쟁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타락해 간다. 개인적 자유나 진실한 언론 보도는 군사적 효율성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를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 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한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