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 소나무총서 31
박현채 지음 / 소나무 / 1992년 4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한국 현대사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국사 책 말미에 간략하게, 해방과 한국전쟁 정도까지만 언급되고 그나마도, 학력 고사 시험 범위가 아니라서 수업도 안했던 것 같다. 물론, 거의 17년 전 일이니, 정확한 기억이 아닐수도..  어쨌든, 왜 학교에선 제대로 된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뗀석기 간석기 보다는, 한국전쟁이나 제 5공화국 같은 가까운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여러 면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지 않나? 진정한 평가를 내리기엔 아직 너무 일러서? 좆도 내세울 거 없고 쪽 팔려서?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다. 얼마 전 티비에서,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취지로 국사 과목이 폐지되어, 기본적 국사 지식도 없는 학생들이 많고 일례로, 안중근 의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의사(doctor)아니냐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는 웃기는데 웃지 못할 뉴스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수학 내신 5등급을 받고도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어느 학생의 공부법을 읽어보니, 줄기 교재를 하나 정해 놓고 마스터 할 때 까지 여러 번 반복 학습하고, 응용력을 기르기 위해 가지 문제집을 두 세권 더 풀었다 한다. 같은 원리가 적용 된다면, 이 책은 한국 현대사 (1945~1991, 해방~제 6 공화국) 의 탄탄한 줄기 교재로 손색이 없다. 뭐든지 기초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나? 각 시대, 각 주제별로, 전문 학자들이 나뉘어 기술하는데, 박명림의 <한국 전쟁의 구조: 기원,원인,영향>가 젤 좋았다. 책을 덮고 나니, 막연히 알던 현대사의 단편적 지식들이, 마치 퍼즐을 다 맞춘 듯, 어슴푸레하나마 하나의 그림으로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 단추가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 못 채워졌지 하는 호기심에 아무래도 1940~1950 (해방, 미군정, 한국 전쟁) 를 제일 재밌있게 열심히 읽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탄스타플'이 역사에도 적용된다. 역설적으로, 힘들게 쟁취한 것은 쉽게 잃지 않는다는 말도 되겠지. 해방이 우리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항일투쟁의 결과 였다면, 외세극복이라는 영원한 굴레에서 조금은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 이건 도무지, 미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시대, 분야가 없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인 일본 식민 통치가 없었다면? 학자들이 말하는 것 처럼, 우리도 선진 문물을 빨리 받아 들여 중세 봉건주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 강대국이 되었다면? 아마 일본처럼 침략국가가 되었거나 - 이는 또다른 비극이다 - 아예 미국같은 슈퍼 울트라 강대국이 되지 않는 한, 결과는 똑같았을거라 생각하니 더 씁쓸하다. 운명론적 발상인가? 암튼 좀 더 공부해 봐야 될 일이고.   

특히 미군정 시기(1945~1948)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아동 발달학으로 정의하자면 '결정적 시기(critical peorid)' 였다고 보인다. 아이로서, 제대로 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토대를 스스로 학습하고 내면화시킬 시기에, 외부 세력(미국)이 개입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 지금까지도, 뿌리 깊은 갈등과 여러 문제들로 고통 받는 것이다. 군대, 경찰, 관료조직,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단추가 잘 못 채워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결정적 시기'로 볼 수도 있겠다. 나의 선입견과 달리, 치안, 농업, 공업등 많은 분야에서, 전국적인 조직이 -조선 노동 조합 전국 평의회 등- 자생적으로 형성 되었으나, 미군정과 지배세력의 방해로 인해, 생산적 발전 가능성이 아예 거세 되었으며, 농지개혁, 귀속 사업체 불하, 원조 특혜 배분 등으로, 그들과 결탁한 신흥 관변 자본가들을 생성하고, 민중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대를 창설하고, 경찰을 일제 출신에서 선출하여 - 경찰 간부 중 82%가 일제 출신이다. 놀랍지 않은가? 열 명에 두 명. 그것도 고급간부는 100%다- 모든 분야에서, '친미, 반공, 반민중적' 이라는 태생적 한계의 굴레를 씌운다.   

한국 전쟁을 보자. 남/북은 부모 로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부부다. 애초부터 부부사이에 갈등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내적 갈등을 해소할 일종의 냉각 기간도 갖지 못한 채,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력한 양쪽 부모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혼 당하고, 것도 모자라 피흘리며 부모들의 대리전까지 치룬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성과 잔인성을 동반하며 진행된 전쟁의 양상은 점령과 수복, 보복과 반보복,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서로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증오심을 각인시키며 남북한 체제의 분단 구조와 분단 의식을 내면화 시켜 갔다. 오랫동안 그것은 동족이라는 민족 의식을 훨씬 뛰어 넘고도 남았다. 상대방은 자기의 생존을 위해 다만 타도되어야 할 대상일 뿐, 동족이라는 의식이 틈입할 사치스런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심각한 생존 경쟁의 한 뿌리를, 어쩌면, 한국 전쟁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어야 하는 논리가 전쟁보다 극명하게 적용되는 상황이 어디 있겠나? 그래, 잊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그것도 내전이라는 특수한 전쟁을 치룬 나라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자식들인 것이다.         

별거 아니지만 흥미로운 몇 가지 사실.

* 영어- 미군정과 한민당 (친일파 민족 반역자, 지주, 매판 자본가들의 반혁명 지배 연합)의 연합과정에서의 통역관의 역할 & 미군정에 의한 군대 창설 과정에서 일본군, 만주군 출신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광복군과 달리, 군사 영어 학교에 입교한 만주군과 일본군계는 정부 수립 이후까지 군부의 고위층을 독점 : 뭣 좀 먹고 살려면, 이 놈의 영어는 해방때 부터 중요했구만.   

* 대구 - 미군정의 탄압과 남한 단독 정부 수립 반대로 총 파업 & 1960년대 최초로 전국 교원 노동 조합 결성 & 경북대생들, 박정희 정권의 성격을 파시즘으로 규정, 투쟁 : 대구는 역사적으로 반정부, 개혁적 성격이 강한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 야당 - 한민당/민주당 '그들이 야당 세력, 또는 체제 반대 세력으로 전환한 것은 다만 이승만과의 갈등 또는 그 정권하에서의 소외 때문으로 설명되어야지 독립 운동 경험, 또는 반독재나 민주화 들로 설명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권력의 배분이며, 민중적 힘에 의한 민주화는 아닌것이다.' : 그러면서 야당의 정통성 운운? 지금도 별로 달라진 건 없군. 

* 분열 - 좌익 내부의 분열, 야당 내부의 분열 : 결정적 순간마다 분열이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역사겠지만. 분열 분열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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