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사회에 대한 작가의 리포트쯤 되겠다. 교수님께 제출하는 대신, 독자들에게 불쑥 내민 리포트 말이다. 유치한 자기자랑도, 돈벌이도 아닐테고, 왜 이런 개인적 공부의 결과물을 공적인 출판물로까지 확대 했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것도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부제까지 달고 말이다. 리포트를 내밀며 작가는 넌즈시 말하는 것 같다. " 내 책 읽고도 뭐 느끼는 바 없냐? 너거도 공부 좀 해라, 마흔 넘은 나도 가리늦게 공부했다. 너거는 젊지 않느냐, 뭘 좀 알아야, 젊은이들이 깨어 있을거 아니냐" 서문에서 언급했듯, 자신의 무지를 밝히기 위해,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했다는 그의 공부 동기는 뭔가 날카롭게 찌르는 구석이 있다. 씨바 뭐라도 알아야 편을 들든가, 욕을 하든가, 이도 저도 아니면, 최소한 입 다물고 있을 타이밍이란 걸 알 거 아닌가. 매체나 주위에서 어설프게 주워 담은, 남의 것이 아닌, 오롯한 나의 판단과 생각, 그것이 똥고집이든 바른 고집이든간에 끝까지 부려 볼 배짱이나 가질 것 아닌가 말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일단, 작가가 공부 열심히 했다는 느낌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어쩌면 한 번 쯤은 궁금했을 주제들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가며, 각 저자들의 논점을 인용, 비교, 분석, 비판 한다. 장정일 혹은, 독자(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동의하든 아니든간에, 이 책의 작가를 포함하여, 책속에 인용된 저자들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관점의 향연을 실컷 즐길 수가 있다. 읽는 간간이, 작가의 목소리가 한 톤을 유지하지 못하고, 삑사리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이 또한, 공부를 마친 자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과정에 있는 자라면, 자신만의 일관된 관점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나 하고, 나름 너그러운 척 해 보기도 했다. 그럼 이 공부를 통해 저자가 배운 것은 무엇인가? 독일과 미국, 영국,중국,일본의 여러 역사적 상황들과 인물들, 한국의 근현대사와 박정희 조봉암등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 가다 보니, 결국 귀착점은 반 민족주의, 반 국가주의, 반 전제주의의 틀 속 어디 쯤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게 맞다면 말이다.  

진정한 공부란 게 이런 거 아니겠나. a를 알고 싶어 a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모르는 b가 나오면 다시 b에 대한 책(자료)을 찾고, 다시c 와 d로 확장해 가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의 즐거움 말이다. 왜 학교에서는 이런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 걸까? 정말 안타깝다. 대충 이름만 알고 넘어가도, 뭣 좀 아는 척 하는데, 혹은 전혀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도 없는 이런 문제들을 끝까지 파헤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의 열정과 근성,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그의 기타 너그러운 여건들(?)이 마냥 부럽다. 여건 탓만 하지 말고 그 열정과 근성을 배우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자신이 별로 없다. ㅠ.ㅠ        

-덧붙임(2000.09.09)-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책 만큼 자주 다시 들춰 보는 책도 없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후에 이런 저런 책들을 읽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웬만한 분야는 이 책이 다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관련 분야가 다른 책에서 언급될 때마다 다시 찾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고 작가의 사유가 잘 정리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의 완성도를 떠나, 책 제목 그대로 인문학 공부의 모범 전형을 작가 스스로 보여 주면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의가 있으며, 이 책이 어느새 내게는 일종의 선생님 같은 존재가 되가고 있는 것 같다. 

* 책 접기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승리는 항상 상황을 운용하는 자의 것이다. 다시 말해 원칙을 고수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을 이용하고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반면 패배에는 승리가 갖고 있지 않은 불변의 법칙이 있다." 

"모차르트의 성공이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모차르트를 억누르는 이중의 억압으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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