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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맨 앞 장에 쓰인, 무시무시한 (?) 경고문에 따라,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도, 교훈도, 플롯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헉 핀이 이끄는 대로, 몇 걸음 뒤에서 슬슬 따라가는 느낌으로 읽었다. 서른이 훌쩍 지나 다시 읽게 되었으니, 어린 시절 만화나 책에서 봤던 단순한 재미 이상의 그 무엇이 필시 있으리란 지나친 기대였나, 아님 자연스럽게도 헉핀이 아니라, 때때로 왓츤 아줌마나 샐리 아줌마의 눈으로, 요 꼬맹이의 세상과 어른을 향한 생존 투쟁기를 지켜 보고 있는, 내 잃어버린 동심이 문제였나. 기대와는 달리, 그닥 새로운 건 없었다.
단순한 스릴과 재미 외에 이제 와서 좀 새로 보인게 있다면, 당시 미국의 분위기 정도랄까. 미시시피 강을 뗏목으로 이동하면서 헉과 짐이 마주치는 선하고 악하고, 때론 그 양면성을 모두 가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과 그들의 생활상, 헉핀의 혀를 내두를 만한 임기응변 -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살아 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습성 아니겠나 - 짐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부터의 순수한 목소리와, 짐을 고발해야 된다는, 프로그래밍 된 양심 사이의 어린 헉핀의 갈등 -역시 프로그래밍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지금 보면, 고민의 여지 없이 당연한 선택도, 그 시대정신의 강요와 의식화된 교육이 올바른 선택을 주저하게 하고, 오히려 죄의식까지 느끼게 만든다.- 짐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 였건만, 짐의 탈출이 톰에게는 하나의 놀이였을 뿐. 천진난만하다고 해야할지 잔인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난감함 정도랄까? -물론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겠지만-
이상하게 최근에 읽은 소설의 모든 비극의 씨앗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잉태된다.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섹스하고, 귀저기값과 우유값을 대고, 학교를 보내고, 결혼을 시키는 것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기본 마저도 내팽개친 다양한 소설속의 아버지들과 현실속의 아버지들이 있지만.
* 책 접기
"늘 이런 식이었지요. 옳은 일을 하든 그른 일을 하든 매한가지였습니다. 인간의 양심이랑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을 탓할 뿐이었습니다. 만일 인간의 양심만큼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똥개가 있다면, 난 그놈을 잡아 독살해 버리고 말 겁니다. 양심이란 인간의 내장 모두가 차지하는 것보다도 더 큰 장소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