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드 앤더슨 지음, 서숙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천 팔백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오하이오주의 와인즈버그라는 시골마을. 시대적 배경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인 산업화는 아직 시작되기 전 인 듯. 아이들 이야기도, 판타지도 없건만, 책을 덮었을 때, 이건 한 편의 아름다운 환상동화라는 생각을 했다. 왜, 그 티비속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 있지 않나. 모닥불 타오르고, 아이는 담요를 덮고 반쯤 졸고 있는데, 흔들의자에 앉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따뜻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뭐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랄까?

크게 보면, 와인즈버그 이글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조지 윌러드라는 소년의 성장 소설쯤 되겠다. 각 에피소드마다, 조지 윌러드가 직/간접으로 연관되며, 각 에피소드 속 주인공의 그로테스크한 삶이 퀼트처럼 흥미롭고 아름답게 수놓인다. 그 하나 하나의 퀼트 조각들을 전부 엮으면, '이상하게 예민한 티끌같은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 이불처럼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내면에서 들끓는 어떤 전쟁을 치르기 위해, 끊임없이 걷고 또 달린다. 우리도 그럴때 가끔씩 있지 않나? 뭔지 모를 정체없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 서성이고, 무작정 미친듯 달리고 싶을때 말이다. 떠나지 못한 자들은 탈출을 꿈꾸고, 인생의 돌발 사건을 꿈꾸며 지루한 삶에서 탈출한 자들은 다시 와인즈버그로 돌아온다. 우리가 때로 그러듯, 그들도 인생의 막연한 허기증을 느낀다. 자신의 옹색한 삶속으로 아름다운 무엇인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욕망으로, 투쟁하고 좌절한다. 사랑받기 원하나 소외되고,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노작가의 말대로, 그들은 그것을 삶의 진실로 받아 들였고, 그 진실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려 했기 때문에, 결국 '그로테스크'가 되버린 것이다.   

조지 윌러드는 와인즈버그로 돌아올 것인가? 탈출에 성공할 것인가? 그의 쓰여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작품 속, 등장 하는 수많은 '손'들 -인간의 손부터 신의 손까지-과 함께 작가의 손이 다시 말하는 듯 하다. "나를 빨아서 다림질할 거야. 그래 날 빨아서 다림질하고 풀을 먹일거야."  그래서인가, 탈출에 성공한다에 한 표.   

여러 아름다운 에피소드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종이 알맹이들'에서 몇 줄 옮겨본다.    

"그는 여자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중략- 여자는 뒤틀린 사과의 달콤함을 발견한 사람처럼 보였다. 여자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먹는 둥글고 완벽한 사과에 다시는 마음을 집중할 수 없었다. -중략- 겨울 동안 그는 자신이 종이쪽지에 아무렇게나 써 놓았던 이런저런 갖가지 생각들을 모두 그 여자에게 읽어 주었다. 그것들을 읽어준 뒤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주머니에 넣었고 그것들은 둥글고 단단한 알맹이가 되었다." 

* 책 접기 

"강해지고 용기를 가져라. 그것이 길이다. 무엇이든 모험을 해라. 대담하게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용감해 져라. 단지 남자나 여자가 되는 것 이상이 되어라. 탠디가 되어라." 

"네가 더 잘 준비될 때까지는 글 쓸 생각을 포기하는게 좋아. 지금은 살아야 할 때야. 난 너를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나 난 네가 하겠다고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싶어. 넌 단지 말장난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돼. 네가 배워야 할 것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가야."  

"당신은 사랑을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삶의 성스러운 돌발적 사고입니다. 당신이 사랑에 대해 분명해지고 확실해지고자 하면, 그리고 부드러운 저녁 바람이 부는 나무 아래서 살고자 하면,실망의 길고 무더운 날들이 재빨리 다가오고 지나가는 마차에서 불어오는 먼지들이 키스로 부드러워지고 열정적이 된 입술위로 쌓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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