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소로우의 '정부觀 & 국민觀'쯤 되겠다. 그에게 이상적인 정부란, 국민 개개인이 각자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살 수 있게끔 하는 정부다. 만약, 정부가 국민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 요구 하면, 법을 어기라고도 한다. 납세 거부로써, 불복종 의지를 확실하게 정부에 보여주라 한다. 

노예해방과 멕시코 전쟁의 1940년대에, 이라크 파병, 양심적 병역기피의 오늘날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정의가 아닌건 알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군대도 가지 말고, 파병도 말아야 하나. 소로우 자신, 인두세를 내지 않고, 감방에서 달랑 하루 살다 나온걸로 신념을 실천하기 충분했을지 모르나, 오늘날엔, 그게 다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렵다. 소로우 자신조차 인두세를 내지 않은 입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내적 갈등의 흔적이 묻어나는 걸 보면 역시, 그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였던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현존하는 정부의 보호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정부에 불복종하는 경우, 우리의 재산과 가정에 미칠 결과가 두렵다. 이는 비단 국가와 국민만의 문제는 아닐꺼다. 독립적이지 못한 다른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리라. 국가든, 개인이든,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거나 이익을 취하지 않는, 완벽히 독립적인 삶을 우리는 살 수 있나?    

언뜻 보이는 그의 엘리트 주의 -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맞다 그가 하버드 출신임을 잠시 잊었다-와 머지 않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그 지위를 잃어 버리고 말 미국에 대한 그의 뜬금없는 '애국심'이 살짝 거슬리기도 했으나, 투표에 대한 그의 지적은 너무나 예리했다.   

"오늘날 정직한 애국자의 시세는 얼마인가? 사람들은 망설이고 후회하는가 하면 때로는 탄원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추진하여 효과를 거둘 정도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들이 악을 몰아내어 더 이상 자신이 그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호의적인 자세로 기다린다. 기껏해야 그들은 선거 때 값싼 표 하나를 던져주고, 정의가 그들 옆을 지나갈 때 허약한 안색으로 성공을 빌 뿐이다. 덕을 찬양하는 사람이 999명이라면 진짜 덕인은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어떤 물건을 잠시 보관하는 사람과 거래하기보다는 그 물건의 실제 주인과 거래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투표는 일종의 도박이다. 장기나 주사위 놀이와 같아. 단지 약간의 도덕적 색채를 띠었을 뿐이다."    

*책 접기

" 내가 다른 사업이나 계획에 전념하고 있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앉아 그를 괴롭히면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먼저 그 사람의 어깨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과거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교회를 갈라놓으며 가족을 갈라놓는다. 심지어 그것은 한개인 조차도 갈라놓는다. 즉 한 개인 속에 있는 '악마적인 요소'와 '신적인 요소'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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