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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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에 출현한 괴수 소설쯤으로 부를 수 있을까? 출연 비중에 차이는 있으나, 각 단편마다 다양한 동물들과 괴수들 출연 하신다. 코끼리, 너구리, 타조, 기러기, 기린, 개복치, 펠리컨, 도도새, 젖소, 흑염소, 돌고래, 달팽이, 열대어 등등 + 외계인, 헐크 호건 그리고 인간 남자.  

어찌해도 고칠 수 없는 엄청난 소음의 냉장고처럼, 작가도 '지금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하다. 힘의 논리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의 '스테이지 23' 속에서, 삶의 재미를 박멸 당한 채, '세상이 변하기 보다 직급이 변하'길 바라며 오늘을 살아가는, 가난하고 소외된, 약해서 외로운 자들, 그들 '저렴한 인생들 사이에 흐르는 심야 전기' 같은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두 다 함께 잘사는, '야쿠르트가 꿈꾸는 세상'이 오길 바라면서.  

맘에 드는 작품도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지만, 대체로 후반부로 갈 수록 더 몰입해서 읽었다. 너구리가 지하로 걸어 들어갈 때는 갑자기 하루키가 불쑥 튀어 나와 깜짝 놀랬고, -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소설의 형식,구성,분위기도 피라미드 같단 생각을 했다. 독창성 1차 생산자, 2차 생산자, 1차 소비자, 최종 소비자 뭐 이런 식 아닐까?-  개복치의 고차원 퐌타지를 쫒아가기 힘들었고, 기하 형의 '실상리' 정착기는 너무 뻔하게 노골적이라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기린의 무릎을 흔들며 아버지 맞죠? 라고 외치던 시급 삼천원의 '나', 헐크에게 당한 그대로, 무고한 약자들에게 헤드락의 폭력을 가했던 '나', 갑을 고시원의 좁은 방에서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고 소리없이 웅크려 자야했던 '나'의 이미지는 강렬하고 슬펐다.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작가의 최고 변별력 아닐까. 삼미보다 약한 유머에 살짝 실망하면서 방심하다가 한 두군데선 빵 터졌다. 똥 이야기류의 가벼운 '빵'도 있었지만, 그보다 ㅋㅋㅋ + ㅠ.ㅠ가 더 많았다. 

그가 만든 카스테라의 맛이 어떻다고, 아직은 뭐라 말하기 어렵다. 일단 첫 한 입은 노골적이고 퐌타지하다. 근데 그 맛이 조미료의 맛인지, 자연의 맛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분들에겐, 그래서 일단 먹어는 보시라 권한다. 그리고, 그 맛에 은근 중독성이 있다는 것도 알려 드린다. 맛의 비결이 뭐든간에.   

그리고, 삼미의 왕팬으로서, 그 마법의 가루가 조미료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 책 접기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듯-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기 마련이다. 디 엔드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했거나, 그 연산의 답을 보았거나, 혹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그런 셈이었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는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았다. 그리고 느낌만으로 <아버지 돈 좀 줘>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어쩌면 피라미드의 건설 비결도 <억울함>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관두면 너무 억울해. 아마도 노예들의 산수란, 보다 그런 것이었겠지." 

"결국 우주는 하나의 사유입니다. 오래전 지구가 네모라고 믿었던 때에 이 지구는 정말 네모난 것이었다는 얘깁니다." 

"건너온 세계는 반드시 사라진다."  

"인간은 서로에게, 누구나 외계인이다." 

"세계란 어떤 곳인가? 당신이 만약 이십일 년에 걸쳐 준비를 해나간다면-더불어 그 태도의 차이에 따라 세계는 한 권의 <괴수대백과사전>이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생물만이 비로소 얻게 되는 이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별게 아니란 생각이 그때 들었다. 맞으면 -아프고, 뉘우치고,숙이고, 무섭고, 궁리하고, 포기하고, 빌붙고, 헤매고, 재빨라지고, 갈라지고, 참담하고, 슬프고, 후련하고, 그립고, 분하고, 못 잊고, 죽고 싶고, 쓰라리지만 이를테면 몇 알의 약, 그 미약한 몇 밀리그램의 화학물질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이었다." 

"글쎄 그정도의 체격 차라면 이미 기술의 문제 따위 넘어선 거겠지."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사는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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