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품목의 경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7
토머스 핀천 지음, 김성곤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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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잠시도 멍 때릴 수 없는 작품 이었다.  '트리스테로'가 과연 무엇인지, 약음기 딸린 나팔은 또 무엇인지 에디파와 함께 추적해 나감과 동시에, '전령의 비극'의 각기 다른 버젼을 비교해야 했고, 바톤 터치하듯 속속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과,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들어야 했고, 사이 사이 작가가 도대체 뭘 말하는지 고민 하느라, 정말 한 순간도 쉴 틈이 없었다.    

읽는 도중, 언뜻 언뜻 다른 작품들의 이미지가 희미하게 겹쳐진다. 개인의 고독과 소통 부재를 이야기 할 땐, '상실의 시대', 역사적 사건이 개입되며 주인공의 모험을 통해 비밀을 찾아가는 전개 방식에선 '양을 쫒는 모험'이나 '태엽감는 새', 비밀 결사, 기호와 상징 등에선 '장미의 이름으로', 빈민, 병든 선원 같은 소외당한 자의 등장에선, '난쏘공', 국가(미국)지배 부분에선, 촘스키의 책, 0과 1의 매트릭스에선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 작품 해설에 '장미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틀린 느낌은 아니었나 보다. 또 신랑 말로는 핀천이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 이라 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했으나, 하루키에겐 살짝 실망감 - 어쨌든, 형식과 주제에 있어 이들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독창성과 앞서나감이 대단하다. 핀천 이전에 또 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엔, 에디파 개인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그치리라 지레짐작 했으나, 소통의 부재, 소외된 노동 등, 개인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마약, 전쟁, 언어의 왜곡, 무정부주의, 나치즘, 가난, 이념의 이분법 같은 전체 사회,국가의 문제로 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모호한 느낌이다. '명백한 것들 뒤에는 또 다른 형태의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다.  

또한, 피어스는 왜 에디파를 유산 관리인으로 지정해 이 모든 과정을 겪게 했나 하는 질문조차, 아예 작가가 모든 가능성을 제기하고 그 모든 가능성이 답이 될 수 있다함으로써, 다층적 의미가 내포된 듯 했다. 독자인 나 스스로 전체 이야기 구조와 인물 들이 표상 하는 바를 거듭 되짚어 끊임없이 고민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왜 그랬을까? 모든 게 피어스의 각본 대로 짜여진 한 편의 연극이었지 싶다. 극 속의 극. 그렇다면 이유는? 평범한 가정 주부로 자신의 탑 속에 안주한 옛 애인을 탑 밖의 광기의 현존 속으로 끌어내지만, 중요한 진실은 결코 알 수 없는 고통을 맛보게 함으로써 복수하려 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마지막까지 각인 시키고 싶은.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너무 많은 큰 주제들을 조금씩은 다 건드리고 있어, 산만한 듯 했고, 개인적으로 1930년대 미국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과 공감이 있었다면, 원문으로 읽었다면 훨씬 더 많은 걸 건질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마지막으로, 건조하지만 왠지 맘 찡한 대목. 그릭웨이 술집에서 만난 남자에게 에디파가 전화해서 말한다. 당신은 자유라고 풀려났다고. 그가 말한다. '너무 늦었어요.' 그녀가 묻는다. '내가요?' 그가 대답한다. '아니요, 내가 말입니다.'    

영어 제목은 'The crying of Lot 49'다. 현실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상징하는 49번째 물품 (트레스테로의 위조된 우표)이 울고 있다. 다시 또 누군가의 금고속에 갇히지 말았음 한다. 

작가가 숨겨둔 숨은 그림 중 겨우 반이나 찾았을까? 그래도 충분히 짜릿하고 즐거웠다.   

*책 접기 

"난 아무것도 믿지 않아, 에디파." 그는 대개 다음과 같은 말을 토해 내곤 했다. "노력은 하지만, 난 정말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   

"차를 뜯어낼 때면 그들 인생의 찌꺼기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인생에서 진정으로 거부당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 인생에는 너무나 적은 것만이 허용되었기에 그들은 그것이나마 잃을까 두려워 받아서는 모두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들이 그저 잃어버리고 만 것은 무엇인지(아마도 비극적으로), 확실하게 알아 낼 방법은 없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그렇게 나누어선 결코 근본적인 진리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중략. 그 밑을 꿰뚫어 보건대 산업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모두 우리에게 엄습해 오는 똑같은 공포의 일부분입니다." 

"실체란 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법이예요. 사방이 닫힌 그 소우주는 나의 입과 눈, 때로는 다른 구멍들로부터 뛰쳐나오니까 말입니다."

'서로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언제나 금방 알아봅니다."  

"우리도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어떤 지도자 없이도 자발적으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곳, 대중들이 영혼의 능력을 통해 집단적으로 교감하여 인간의 신체가 작동하는 것처럼 힘들이지 않고 자동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그런 곳이 가능함을 믿습니다. 만약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실제로 일어난다면, 나는 그것또한 바로 기적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무정부주의자의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은유의 행위란 결국 우리가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딸 진리나 허위에 날카로운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위치, 즉 안쪽에 안전한 상태로 있었는지 아니면 바깥쪽에 상실된 상태로 있었는지에 달린 문제였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소중히 간직해요. 왜냐면 그것을 잃어버릴때 당신은 그만큼 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쉬우니까 밀이오. 당신은 그 순간부터 아마 존재하지 않게 될 거요." 

'우리는 하룻밤에 우리 자신의 패턴을 수십만 가지의 삶들에게 내보낼 수 있는 하나의 안테나야.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 자신의 삻이기도 하고."  

"난 당신이 필요해. 단지 그날 밤의 기억만을 내게 가져다 주는 것으로, 당신은 나와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거야."   

"그 목소리들은 가능한 천만 개의 다이얼을 돌려 가며,모욕적인 말과 더러운 욕을 내뱉고 공상과 사랑을 기도하는 일을 단조롭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 언젠가는 자신을 드러내 보일 그 불가사의한 타자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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