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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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 표지에서 몇 자 옮겨 본다.  

'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암울한 미래의 런던을 배경으로, 열다섯 살 소년이 극단적인 비행을 저지르다 체포되고, 새로운 범죄 교화 수술에 자원한 후 욕망과 감정을 통제받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폭력과 죄악에 대한 성찰 속에서 국가 권력의 억압을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이 작품은 조지 오웰과 헉슬리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한다.'  

'머리카락이 쭈뻣 서게 만드는 속도감과 에너지. 오웰의 미래상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 <<뉴욕타임스>>' 

읽는 동안 내내 불쾌하고 불편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마치 놀이를 즐기듯,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알렉스와 그 일당들. 잔인하고 태연한 묘사. 읽을수록,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언짢음에 불쾌하면서도 묘하게 알렉스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속도감과 에너지 있게 전개한  작가의 역량과, 끔찍한줄 알면서도 계속 보고 싶은 인간의 은밀한 호기심 때문이겠지.  

알렉스 일당은, 마약을 하고, 가게를 털고, 노인을 폭행하고, "시계 태엽 오렌지"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어느 작가의 집에 가면을 쓰고 무단 침입해, 남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남자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윤간한다. - 실제로 작가 앤서니 버지스의 아내는 군인 4명에게 윤간 당했다고 한다- 다시 또 홀로 사는 노파의 집을 털다가, 독선적 대장 노릇을 할려는 알렉스를 못마땅하게 여긴 친구들의 배신으로 알렉스는 체포되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 다툼끝에 동료 재소자를 살인하게 되고, 아직 실험 단계에 있던 교화 요법을 두 주간 받게된다.  

그 요법은 알렉스의 몸에 루도비코 약물 투여 후, 알렉스가 좋아하는 베토벤 음악과 함께 끔찍한 폭력과 성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상을 보는 동안 알렉스의 눈은 기계장치에 고정되어 있어 본인이 보고 싶지 않더라도 절대 눈을 감을 수 없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적인 생각만 하더라도 조건 반사로 두통 복통 같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결국 알렉스는 정부가 시계태엽을 감아야만 움직이는 오렌지 - 인간은 모두 기계로 변해버렸지만, 신이 이 세상 과수원에 심은 세상이라는 나무에서, 과일처럼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말레이말로, 오랑은 인간을 뜻하는데, 발음이 비슷한 이유로, 그 과일중 오렌지가 쓰였다 한다.- 아니, 인간이 된 것이다.  

출옥한 알렉스는 집으로 돌아가나, 가족에게 외면 당하고 방황하다 예전에 구타한 적 있는 노인과 그 친구들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다, 경찰이 출동하나, 그 경찰들 역시, 알렉스를 배신한 친구 딤과, 오랜 적수 빌리보이였다. 정부는 정치 사상범의 수용을 위해, 일반 범죄자들을 교화(??)하여 교도소에서 내보내고, 질서와 치안 유지 명목으로, 어린 깡패들을 경찰로 모집한 것이다. 개로 하여금 개 사냥을 시키는 것과 같다고 할까?  

경찰의 무차별 폭력 후, 근처 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 집은 바로 시계태엽 오렌지 작가 - F.알렉산더-의 집이었다. 알렉스는 그의 소설 표지에서 이름을 보고 말한다. '맙소사 또 다른 알렉스잖아.' 이를 맘대로 해석해 본다. 결국 아내를 죽게 한 것은, 두 명의 알렉스였다 면 확대 해석 이려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알렉스였지만,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여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알렉산더였다는 의미는 아닐런지. - 물론 책에는, 윤간 당한 후 아내와 알렉산더에 대한 언급은 없다 - 앤서니의 잠재된 죄책감의 표현은 아닐런지... 

알렉산더는 처음엔 알렉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범죄 통제 정책의 산 증인으로서, 현 정부를 다음 선거에서 복귀하지 못하게 만들 무기로 사용 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알렉산더는 알렉스가 그날의 알렉스임을 눈치재게 되고, 알렉스를 방에 가둔 후, 음악을 크게 틀어 알렉스를 고문한다. 여기서 알렉산더, 아니 인간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아내를 잃은 복수를 자신이 그렇게 혐오하고 비난하던 바로 그 루도비코 조건 반사법을 이용하여, 알렉스를 괴롭히는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알렉산더를 비난할 맘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은 야비한 것이다. 인간의 그 야비한 속성에 있어서는, 결국 알렉산더나 알렉스나 동일 인물인 것이다.  

알렉스는 고통에 못이겨,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루도비코 요법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고, 다시 현 정부의 선전물이 되는 댓가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아무런 고통없이 듣고, 취직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청춘은 가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새사람이 된 듯한다. 사람 죽이고, 오만 나쁜 짓 실컷 하다가, 아무런 자각, 반성, 죄책감도 없이 현정부에 빌붙어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청춘은 가버려야 한다며, 미래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들에 대해 지껄인다. 이런 혐오스런 캐릭터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다잡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나? 결말까지 불쾌하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악이 가치 있는가? 태엽감긴 오렌지로 강요된 선이 가치 있는가?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자유의지라 하더라도, 타인의 삶에 위해를 가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물론 그 "위해"라는 것이 자의적 판단이어서는 안된다.  

* 책 접기  

"난 이런 일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 내가 제일 강하게 반대했을 거다. 눈에는 눈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했지. 누가 너를 때리면 너도 반격을 하겠지.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너 같은 야만적인 깡패 놈들에게 정말 심하게 타격을 받은 국가는 왜 반격을 할 수 없다는 게야? 그러나 이 새로운 견해에 따른다면 안 된다는군. 새로운 견해에 따르면 악당을 착한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거지. 이 모든 이야기가 나한테는 정말 부당하게 들려." 

"착하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어. 말하고 보니 자기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번 일 때문에 며칠 동한 잠 못 들어 할 거야.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들이구나" 

"현 정부는 무엇이 범죄인지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자기들을 언짢게 만드는 사람둘이면 누구든 생명력과 용기와 의지력을 빼앗아 버리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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