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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미술관 - 자기다움을 완성한 근현대 여성 예술가들
정하윤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2월
평점 :
그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면 무턱대고 읽고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 미술관이란 제목의 책들을 들여다 보면 중복되는 작품에 대한 해설과 그림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점점 소원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여성이란 타이틀로 성을 구분짓는 글들에도 살짝 시들함이 있었습니다.
여성 운동의 중요성도 알겠지만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들의 한 부분이란 생각에 그 보다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유년시절 남성들의 부당함도 많이 겪겠구나 싶은 이해심에 남성학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성을 이분화 시켜 이야기 하지 말고 인간으로써의 삶에 대해 말하는 책을 접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은 제게 어떠한 끌림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표지의 강렬한 색상과 표지에 담긴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았죠.
완전 제 취향의 표지를 보면서 딱 떠오른 생각은 갖고 싶다 였습니다.
서둘러 책 소개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접했던 작품들과는 동떨어진,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도 있었지만 하나하나 시선을 사로 잡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책 소개를 읽는 순간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다가왔습니다.
설레는 맘으로 책을 받아들고 책상위에 놓은 후 잠깐 자리를 비웠었는데 아이가 책을 보더니 궁금해 합니다. 본인이 너무도 좋아하는 컬러라면서, 이런 핑크색은 만들기도 어렵다는 둥..
이 때다 싶어 서둘러 책을 펼치며 그림을 보여줬습니다.
책읽기를 멀리하는 녀석이라 뭐라도 함께 보고 싶은 다급한 마음에 늘 권하곤 하였는데 이런 능동적인 자세는 참 오랜만에 겪어본지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생각보다 아는 작품도 많았고, 작품을 읽어내는 수준도 저보다 높아 므흣해졌습니다.
아이와 제가 눈여겨 보았던 작품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하였는데 화가의 이름은 정말 낯설었습니다.
그림을 보자마자 아이는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그림 같다고 하고, 저는 왠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들 같지 않냐고 말했었는데, 관련된 글을 보고 살짝 어깨 으쓱하였습니다.
누구나 추측 가능한 해석이었겠지만 이런 소소한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모자지간입니다.
니키 그 생팔의 <사격 회화>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내용이 충격적인 것이 아니고 발상의 참신함이 허를 찔렀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품들이 표현하고 있는 내용들이 모두 신선하고 놀라웠지만 전 이 작품이 넘도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생팔의 타로 공원 언젠가 저도 꼭 한번 가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보았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기괴스러움과 불편한 감정이 기분을 다운 시켰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 담긴 작가의 사연을 알고 나서야 바로 숙연해짐과 동시에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되었죠. 예전에는 단지 그림과 설명을 읽으면서도 그랬었구나 정도 그쳤던 감정인 것에 반해 이번 책을 통해 본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화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제게 인상깊게 다가온 것은 여성들이 겪었던 억압과 핍박을 견뎌내고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라는 단순성이라거나 사회 비판적인 태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접근이 가능하게 한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 화가들의 인생과 작품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그것을 풀어낸 작가의 필력 또한 제 몫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땡땡이 호박도 자주 보았었는데 화가가 쿠사마 야요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고 지금도 정신 병동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느 방송에서 이야기를 본 것 같기도 하였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지아 오키프란 화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열 다섯 명의 작가 이야기가 각각 수록되었기에 시선을 끄는 작품부터 읽기도 가능했는데 사실 쿠사마 야요이를 읽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조지아 오키프란 화가의 글은 제일 마지막으로 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을 읽으면서도 많은 감명이 있었지만 여성 화가가 아니라 조지아 오키프로 기억해 주기 바란다는 화가의 말이 마음에 콕 와서 박혔습니다.
어쩌면 우리 여성들 스스로 여성이라 명명지어 우리의 틀을 좁은 공간으로 가둬두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성이란 말을 제하면 동등해질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 그러하여 여성이라 국한된 표현들을 저도 모르게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하고 싶었어도 이 책 <여자의 미술관>이 속편으로 또 나오길 희망합니다.
우리의 화가 정강자님의 작품과 이야기도 인상 깊었는데 맺는글에서 아직도 소개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 화가들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는 글이 계속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였습니다.
담고 있는 내용도 훌륭한데 구성 또한 맘에 꼭 들었습니다. 다만 실제 작가의 사진 한장이라도 더 수록해줬더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그 만큼 소개해 주신 화가들에게 관심이 많이 생겼다는 증표겠지요.
힘들 삶을 살았던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되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이한 체험을 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안녕과 무사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제게, 혹여 고통이 다가와도 두려워 말고 용기내어 헤쳐나가라는 응원의 메세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