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이라는 긴 제목의 소설을 읽었다. 로맹 퓌에르톨라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책 표지에 있는 작가 소개를 보자면 5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상하고 DJ, 작곡가, 마술사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고 지금은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40세에 불과한 나이지만 프랑스, 스페인, 영국 오가며 무려 31차례에 걸쳐 이사를 했단다. 이 책의 배경도 자신의 현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긴 제목만큼이나 기대가 되었던 책이다.


 


  소설은 인도 고행자 파텔이 이케아 최신 못 침대를 사러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여 이케아 매장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택시기사는 귀스타브라는 집시인데 욱하는 성격에다 초행길 손님을 보면 바가지를 씌우는 고약한 사람이다. 사실 파텔은 고행자가 아니다.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신기한 마술이나 눈속임으로 자신이 영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속여 왔다. 이번에 못 침대를 사기 위한 비용도 모아서 줄 정도로 순진한 마을 사람들이다. 파텔이 가지고 있는 건 100유로짜리 한쪽만 프린터 된 위조지폐 한 장, 앞뒤가 같은 50센트 동전, 마술 소품인 여섯 조각난 선글라스가 전부다. 이케아 매장으로 택시를 타고 가지만 택시비가 있을 턱이 없다. 택시비는 고무줄이 달린 위조지폐로 내고 다시 잡아당겨 회수한다. 무임승차인 셈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귀스타브에게 표적이 된 우리의 주인공 파텔. 이케아 매장에서 자신이 구매하려 했던 못 침대는 하필이면 매장에 없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고, 가격 또한 100유로가 넘는다. 결국, 이케아 매장에 숨어 하룻밤을 지내려고 했던 파텔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사람들로 인해 옷장에 숨는데, 하필이면 이 옷장이 영국으로 배달되는 바람에 원치 않은 영국행이 옷장에 갇힌 채 시작되는데 ……


 


  소설의 묘미는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들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된 점도 있지만, 이야기를 흐름에 맞게 짧게 끊어놨기 때문에 전체적인 그림이 쉽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설정이 참 재미있다. 이케아 매장이 인도에 없어 파리까지 직접 찾아가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 옷장 안에 갇혀 트럭으로 이동하는가 하면, 여행용 가방 안에 직접 들어가기도 하고, 열기구나 배가 동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수단에서 온 밀입국자 비라지 일행을 등장시켜 밀입국자를 추방하는데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한 멀리 보내려는 영국 정부의 정책을 꼬집기도 한다. 세계적인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등장하는 것도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이다. 주인공 파텔이 개과천선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잠시 나왔다 사라지는 조연일 뿐이다.


 


  못이 박혀있는 침대를 본 적이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마땅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요즘에는 못 침대에 누워 수행하는 고행자가 별로 없는 듯하다.


 


  사람 사는 곳이 불평등한 것은 어디에 가든 있는가 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파텔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힌다.


  어째서 누구는 모든 게 풍성한 곳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걸까? 모든 걸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건 왜일까? 누구는 사람답게 사는데, 누구는 그저 입 다물고 죽을 권리밖에 가지지 못한 걸까? 왜 불행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늘 같은 사람들이어야 할까? -82p


  책을 덮으며 이 책을 번역한 양영란 씨가 남긴 다음 글이 이 소설을 잘 설명해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이란 원래 그렇다. 침대를 사러 왔다고 해서 침대만 구입하고는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떠나온 곳으로 곧장 돌아가게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 계획은 세우지만,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애써 세운 계획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낯설기만 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엎치락뒤치락의 반복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279p


  역자의 표현처럼 문명의 세계에서는 원시인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주인공 파텔의 엉뚱한 모험에 휩쓸려 좌충우돌,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속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다면 이케아 옷장에 들어가면 된다. 아니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경험을 같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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