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지적 스릴러라고 해서 좀 색다른 장르를 접하겠다는 느낌으로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을 읽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 4부 작가가 썼다는 점도 흥미를 유발했다. 책 뒤표지에 있는 인류 역사를 바꾼 세 개의 사과 - 이브, 뉴턴, 세잔의 사과 그리고 한 천재가 베어 먹은 네 번째 사과의 비밀이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긴 건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해군 암호기인 에니그마를 해독했다는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래서 책 제목인 최후의 방정식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책을 펼치면 앨런 튜링의 사진과 함께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어지는 페이지에 158,962,555,217,826,360,000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의 암호 생성기인 에니그마가 만들 수 있는 조합의 수란다. 1해 가지가 넘는 조합의 암호 생성기를 해독했다니 정말 수학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앨런 튜링이 사과에 청산가리를 묻혀 한 입 깨물어 자살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다음날 가정부에 의해 경찰서에 신고되고 사건 현장에 온 경찰은 코렐 경사와 동료 블록이다. 이들은 가정부를 통해 사망자는 앨런 튜링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 현장에 대한 세밀한 수사가 진행된다. 이후 사망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부기관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을 받게 되고, 사건은 자살로 판명되지만, 주인공 코렐은 분명 뭔가가 있다는 낌새를 느끼고 계속 수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

 

  동성애자가 범법자인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동성애자가 법적으로 결혼까지 인정하는 곳도 있지만, 소설의 무대인 1950년대의 영국은 그렇지가 않았다. 동성애자가 사회에서 배척받던 시기였고, 결정적으로 두 동성애자가 자국의 비밀정보를 빼돌려 소련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범정부 차원으로도 배척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당시 미국은 메카시 광풍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들로 몰리면 큰일 나는 시기였다. 앨런 튜링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지만, 동성애자였기에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역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처음부터 스릴러라는 장르라고 해서 많이 기대했다. 최후의 방정식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잔뜩 기대했었는데, 소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주인공 코렐 경사가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독자는 점차 앨런 튜링을 알아가는 과정만 전개된다. 덧붙여 주인공 코렐 경사를 알아가는 과정도 같이 전개될 뿐이다.

 

  54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 책이 두꺼워 들고 다니면서 읽기가 참 불편했다. 책의 판형을 바꾸면 부피가 줄어서 들고 다니기가 편할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라도 스릴러 특유의 반전이나 새로운 사실을 캐내는 그런 이야기는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책 제목에서 말하는 최후의 방정식은 튜링이 에니그마를 해독한 사실일 뿐이다. 어쩌면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서 풀어야 할 방정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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