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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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가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을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장미의 이름>, <프라하의 묘지> 등 소설을 먼저 접했으면 작가에 대해 좀 알 기회가 있었을 터인데, 강연이나 칼럼 등 기고 글로 먼저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작가에 대해 알음알음 알고 있는 지식은 조금 있긴 하다. <다빈치 코드>로 유명하게 된 댄 브라운을 통해서였다.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책이 에코의 책과 나란히 진열되어 흥분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 있기 때문이다.
 
 <적을 만들다>는 특정한 주제에 대해 요청받은 담화나 칼럼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작가가 직접 작성한 서문으로는 원래 이 책 제목은 부제로 달린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었다. 하지만 소박한 제목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라는 편집자의 염려가 첫 칼럼인 <적을 만들다>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글을 읽다 보면 해박한 작가의 지식에 탄복한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기도 하고,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공부벌레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알만하다. 석가의 '불의 설교'까지 책 속에 인용한 것만 해도 그렇다. 공부벌레, 간서치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는 증거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에서 에코는 비밀이란 애초부터 없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지를 정부에서 결정했다면 지금은 언론의 힘이 세졌다는 것인데, 폭로할지 말지를 정치권력과 협상하기도 하면서 언론이 독립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아직도 정부가 결정하는 정반대의 상황이지만 말이다.
 
 조금 색다르게 읽은 부분은 ‘보물찾기’다. 교회에 있는 보물을 나열한 글인데, 우리가 흔히 진귀한 보물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성인들의 유골이다. 중세 유럽 훌륭한 성인이 죽으면 신체 일부를 부적처럼 가져가는 유행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특정인의 유골이 여러 성당에 분산된 경우가 생겨날 수 있는 이유다.
 
 흥미를 끄는 부분도 있다. 갈릴레오가 1637년에 쓴 편지에서 목성 주변에 있는 위성들의 위치를 관찰하면서 경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방법이다. 오늘날이야 기술이 발달하여 그런 불편이 필요 없겠지만, 옛날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파도가 출렁이는 배 안에 외부의 진동과는 무관한 관측통을 만드는 방법인데, 아쉽게도 투자자가 나서지 않아 좌절되었단다.
 
  우연한 기회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까지 부드러운 글만 읽다가 투박한 글을 접했다는 느낌. 그래서인지 일부 글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끝까지 읽었다는 데 만족을 느낀다. 소설도 꼭 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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