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 2012년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나?
김인성.이병창.김영종 외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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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사태가 분당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동안 자칭 혁신하겠다는 혁신비대위가 보여준 것은 결국 이런 거였다. 통합진보당의 패권을 자신들이 차지하든지,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깨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치사에 길이 남을(?) 전무후무한 일들을 자행한다. 본래 제명은 어느 정당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혁신비대위가 감행한 제명은 성격이 달랐다. 처음에는 특정 비례대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그 후보보다 선순위에 있는 장애인 전략후보를 제명했고, 나중에는 탈당하고 같이 신당을 꾸릴 비례대표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또 한 번 제명을 단행했다. 정치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비례대표 경선에 부정이 있었다는 것으로 시작된 이 사태. 과연 2012년 5월 통합진보당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대강의 본질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냥 1차 조사보고서에서 언급한 총체적 부실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정도였고, 2차 조사보고서 역시 조작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선택한 책이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책이었다.


당초 진상조사위가 4월 12일 꾸려진 것은 참여계 오목만 후보가 제기한 전여농 윤금순 후보의 부정투표 논란이었다. 그래서 오옥만 후보가 추천한 고영삼 위원과 윤금순 후보가 추천한 신지연 위원이 진상조사위에 들어갔고 조준호 공동대표가 위원장으로 선임된다. 그런데 갑자기 부산 금정구의원 이청호가 당 홈페이지를 통해 부정선거의혹을 제기하고, 며칠 뒤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선거부정 문제를 부각시킨다.


겉으로 나타나는 통합진보당 사태의 시작은 5월 2일 있은 조준호 위원장의 진상조사결과 발표다. 이날 조준호 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비례대표 선거를 선거관리 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나중에 제출되는 진상보고서에는 진상조사위가 정작 조사해야할 윤금순 후보의 부정투표 논란에 대한 것은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더 큰 문제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사실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내용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과연 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일까? 책에는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글은 김철민 수원시민신문 기자가 쓴 글이다. 기자의 글에 따르면 사태의 발단은 지난 총선 결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보인다고 했다. 총선 결과 당권파 절반의 승리, 울산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 전멸, 참여계는 1석만 얻고 전멸, PD계 노회찬과 심상정 정도만 살아남았다. 이 결과로 유시민과 심상정은 거의 패닉에 빠지게 되고 당권파의 조직력과 결합력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즉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권파의 흠집과 부정이 필요했다. 조사위가 구성되고 이정희 공동대표는 조사위에 전권을 주는 실수를 하였고, 조사위는 교묘하게 언론을 통해 비례대표 선거를 총체적인 부정선거로 전 국민에게 노출시켰다. 당권파는 즉각 조사위의 부실한 조사를 지적했지만 다음 날 조준호 위원장은 일부 사과만 하고 대충 넘어가 버린다. 그리고 조중동에 의해 시작되는 종북주의 망령. 그래서 기자는 조준호의 오판, 심상정의 노림수, 유시민의 과욕, 이정희의 무대응이 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공감 가는 또 하나의 분석은 김영종 작가의 글이었다. 철저하게 기득권과 언론, 그리고 진보 지성인들이 합세하여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가 피라미드 상층을 지키는 엘리트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것을 막았다는 것. 아니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몰론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그 중심에는 이정희 전 대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이 사태의 본질을 정리한 것은 아무래도 김인성 교수가 아닐까싶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고, 지역의 건설업자가 자기 이권 챙겨 줄 국회의원 만들려다 실패한 사건이다" 이 한 문장이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어보고 낸 결론이니 말이다.


책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은 이병창 동아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누가 죽산 조봉암을 죽였는가?'라는 글이었다. 죽산 조봉암을 죽인 것은 이승만 정권이지만 당시 장면이 이끌던 민주당은 이를 침묵으로 지원하였던 것이란다. 왜냐하면 너무 무서운 기세로 부상하는 진보당이 민주당에게는 부담 가는 존재였던 것이었다는 것. 그래서 이승만 정권이 사법살인을 하는데 조연으로 방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4·19 이후 분출하는 민중적인 요구를 수용할 그릇이 되지 못했다. 진보당과 조봉암이 있었더라면 분명 그런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란다. 그래서 5·16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안타깝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역사 앞에 통곡한다면서 말이다.


유시민이 말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라는 것은 나치의 논리 즉 국민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전후 나치와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인권이론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것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머리에서 입까지만 진보인 사람들, 진보인 척하지만 보수인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진보 언론을 표방하지만 오히려 더 정파적인 한경오프(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어쩌면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태로 분당 세력들의 진의를 알게 되었고, 개방형명부 비례대표에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넣은 것이 얼마나 당에 해악을 끼치는 지, 그리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으니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시우 사진작가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낙관주의라고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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