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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예술을 ‘엿먹이다’ - 미술비평은 어떻게 거장 화가들을 능욕했는가?
로저 킴볼 지음, 이일환 옮김 / 베가북스 / 2012년 6월
평점 :
비평가들 중에도 억지 끼워맞추기의 대가가 있는 모양이다. 거장 화가들의 걸작을 자기 마음대로 재해석하고,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이념(페미니즘, 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을 억지 끼워맞추는데도 이들을 실력있는 비평가로 인정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라는 책에서 이같은 아이러니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제목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책인데, 무려 40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서론에 처음부터 등장하는 생뚱맞은 용어들과 잦은 줄표(-) 때문에 정말 힘들게 시작했지만, 이후에 나오는 거장들의 걸작을 따로 설명하는 부분부터는 술술 읽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수월하게 읽혀졌다.
책에서 인용하는 작품은 고작 일곱 점이다. 그런데 고작 일곱 점만으로도 이렇게 책 한 권이 써진다는 것은 신기할 것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논문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알면 쉽게 이해갈 것이다.
비평가들이 사용한 도구는 주로 직업적 왜곡. 쉽게 말하면 그림을 글로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자신들의 알량한 학식을 도구로 활용하여 정말 그런 것처럼 재단해버린다. 뭐 이정도까지는 별 문제가 안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비평가들은 전문가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결과로 나온 최종 해석은 작품과는 영 딴판이 되어 버린다. 이를테면 책 표지에 등장하는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은 본래 풍요로운 보이트 집안의 가족 초상화인데 심한 언어 유희와 그림 중 일부 소제에 대한 억지 끼워맞추기식으로 이 작품의 주제를 '생물학적 그리고 예술적 생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림을 안다는 것은 참 어렵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전시회에 가서 명화를 감상하고 그림에 담긴 뜻을 알아내기란 정말 어렵다. 나 역시 그래서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기 전에 작품에 대한 일반 해설을 먼저 찾아보곤 하지만 전문적인 예술평론가들의 해설은 접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만약 이 책을 읽어보지 않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논문만 읽었다면 나 역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비판없이 받아들였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작품은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느끼는 것이란다. 눈으로 보는 것이지 글로 읽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서 이면에 있는 것까지 읽으려 하다보면 작품의 이면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뭐 난 비평가가 아니니 그럴 걱정은 없다.
책을 읽다보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이 모두 가운데 몰려있었다. 컬러 인쇄 때문에 가운데로 몰아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쉽다. 꼭 그렇게 몰아야 한다면 책의 앞 부분에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