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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문학 - 사랑과 죽음 그리고
전규태 지음 / 책마루 / 2011년 5월
평점 :
나에게는 낮선 이름이지만 우리 국문학계의 전설로 일컫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마광수, 최인호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사람들이 스승으로 떠받드는 거장. 췌장암 수술 이후 주치의가 추천한 예술치료법의 하나인 '그림 그리기'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한 사람. 시와 그림이 있는 전규태 에세이 『나의 삶 나의 문학』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라는 부제를 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삼성의료원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이 작가 외에는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췌장암이 어떤 질병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 불과 얼마 전에 초췌한 모습의 사진으로 언론에 비춰진 애플 신화의 주역 스티브 잡스 역시 현대 의학의 힘만으로 완치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역시 긍정적이고 느긋한 마음을 가졌기에 자연 치유되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정도다.
작가가 췌장암 수술 이후 의사가 권유했던 것은 '출가하는 심정으로 속세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권고에 따라 국내 산사를 두루 돌아다녔고, 수술 부위가 아문 이후에는 일본과 호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세계일주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전반부에서 삶이나 생활, 성과 몸, 아름다움, 사랑과 죽음 등 삶에서 결코 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을 다룬다.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부분은 사랑이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사랑과 죽음 그 환희의 찬가' 부분에 나오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야기다. 지(知)보다 신(信)을 중시했던 12세기 자칫 이단으로 내몰릴 소지가 있었음에도 '12세기 데카르트'로 불렸던 사람 아벨라르. 그는 엘로이즈를 사랑한 이유로 동양에서 사기를 쓴 사마천과 같은 궁형(宮刑)을 당하고 수도원으로 잠적했다. 엘로이즈 역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고 밤마다 아벨라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이 둘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끝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책이 다른 책과 차별화 되는 점이라면 단연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그린 그림을 넣은 것이다. 수채화, 유화, 동양화, 크로키 등 다양한 형식의 그림들이 글과 어우러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차별화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머리글로 시작한 책이 아포리즘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어쩌면 마지막 편이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작가 자신의 '나의 삶 나의 문학'이기에 마지막을 닫는 마당은 조금 특별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린 것은 아포리즘이다. 대신 진리나 좋은 말을 압축한 단순한 아포리즘의 정의에 해당하는 것 보다는 스스로 깨우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한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래서 그 중에는 기독교도인 작가가 불교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아포리즘도 나온다. 몰룬 본문에서도 몇 차례 거론하지만 말이다.
옥에 티라면 차례에 나오는 3장 '원초적 생명력을 찾아'의 세 편의 글의 페이지가 틀렸다는 것과 불필요한 글자가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는 정도다.
단순히 글 읽는 재미만 있는 책이 아니다. 스스로 졸시라 밝히지만 훌륭한 시가 있으며 유명 시인의 시에 작가가 그림 그림을 곁들인 것도 있다. 물론 작가가 여행 중에 그린 다양한 그림 또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장르다. 그래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책에 취미를 붙이기에는 딱인 것 같다. 대신 누드 크로키가 많이 나오기에 추천하는 대상은 가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