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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예로부터 전쟁이 가져오는 비극은 비단 나라 잃거나 되찾는 것만이 아니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을 보면 명나라 지원군이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입히는 해악을 기록한 부분이 나온다. 과거나 현재나 전쟁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여성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정래 선생의 작품을 접한 것은 안타깝게도 얼마 전에 읽었던 <허수아비 춤>이 처음이다. 천민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인데 솔직히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하는 입장이라 다른 작품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미 1974년에 중편으로 발표된 것을 이번에 장편으로 전면 개작해서 낸 작품이 바로 『황토』다.
소설은 일제시대를 시작으로 해방을 맞게 되고 곧이어 벌어지는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은 정전협정으로 끝나지만 시대가 만들어낸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점례가 원작이 발표된 1974년까지 살아온 이야기다.
점례에게는 자식이 셋 있다. 아니 원래는 넷이었는데 한국전쟁 와중에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셋이다. 그런데 셋 모두 아버지가 다르다. 이는 점례가 근 현대를 살아오면서 입은 상처를 고스란히 표현한다.
사건의 발단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에 일하던 어머니가 어느날 과수원의 주인인 일본인에게 겁탈당할뻔한 일이 생긴다. 이 현장을 본 점례의 아버지는 주인을 폭행하게 되고 이때문에 주재소에 끌려가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면회하러 간 점례는 주재소 주임 아마다를 만나게 된다. 야마다는 점례에게 흑심을 가지고 어머니 마저 잡아들이고 결국 점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야마다의 첩이 되어야 했고 얼마 후 야마다의 아들을 가졌고 낳게된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야마다는 점례와 아들을 두고 야반도주를 한다. 이후 점례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몸이라 큰이모의 권유로 키우던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박항구라는 독립투사와 결혼을 하게된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딸 세연과 세진이 태어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남편은 전세가 불리하자 처자식을 남기고 또 북으로 떠난다. 결국 점례는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던 남편의 전례때문에 군인들에게 끌려가 취조를 당하고 취조실에서 만난 파란눈의 미군장교 프랜더스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되지만 대신 프랜더스의 거소에 가정부로 일하게되고, 우연히 겁탈 당한 것을 계기로 현지처가 되어 버리고 아들까지 낳게된다. 하지만 프랜더스 역시 말도 없이 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점례는 결국 혼자가 되는데, 어머니에게 맡겨두었던 큰 아들 태순을 데려와 씨가 다른 세 자식을 키워낸다.
아버지가 다른 세 명의 자녀들. 하지만 점례가 행복했다고 기억하는 기간은 결혼을 하고 삼 년가량 신혼살림에 젖었던 기간이었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들이지만 끝까지 키워낸 위대한 어머니 점례. 비극적인 한 가족사이기도 하지만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1년이 되던 해였다. 전쟁이 이 땅에 가져온 재앙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쩌면 소설을 읽는 시점이 절묘하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