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브론테의 비밀 일기
시리 제임스 지음, 노은정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재미있는 발상에서 출발하는 소설은 때로는 정말 사실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더구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유명한 실존인물이고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과 맞닿았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물론 사실과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창작된 것도 한 편의 소설이다. 작품 속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샬럿 브론테의 비밀일기』는 어느 날 아일랜드의 어느 외진 농가 지하실에서 비밀일기가 발견되었고, 이는 샬럿 브론테의 자필 일기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에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적인 명작 <제인 에어>가 나오게 된 과정이고, 나머지 하나는 샬럿 브론테가 청혼을 받아 결혼하게 되는 자신의 아버지 밑에 있던 목사보 아스 벨 니콜스와의 사랑이야기다.

소설은 샬럿 브론테가 청혼을 받은 1852년부터 결혼에 이르는 1854년까지 2년 정도의 기간에 쓴 비밀일기로 주된 내용은 샬럿이 그 시점까지 살아온 모든 이야기다. 로 헤드 기숙학교 시절의 이야기, 성직자의 딸들의 학교에서 두 언니를 잃게 된 사연, 세 자매가 필명으로 '시 모음집'을 내게 된 계기와 세계적인 명작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등이 집필되는 과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니콜스와의 갈등 등이다. 일기라기보다는 자서전에 가깝다. 다만 기술하는 기간이 짧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정말 무한한 것 같다.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 것과 연관된다고 생각된다. 브론테 자매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시 모음집'과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 때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문학에 관심이 없거나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이들이 사용한 가명은 벨 삼형제(커러, 엘리스, 액튼 벨)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심한 시대라 남성적인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사실 브론테 세 자매의 작품들이 나오기까지 소설과 똑같은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작가가 샬럿 브론테의 일생을 연구하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에 입각해서 쓴 것임을 프롤로그에서 밝혔다. 이야기의 뼈대는 사실이라는 말에서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절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뤘으며 급기야 사랑하는 사람을 얻어 결혼까지 하는 행운을 얻었으니 단연 인간승리라 할 만 하다. 다만 비밀일기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 뒤 에필로그에서 보여 주는 삶은 결혼 9개월 만에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제법 두툼한 분량이랴 처음에 무리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자마자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각주가 너무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책이나 동인지, 잡지 등에 대한 각주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나았을 듯하다.

브론테 자매의 작품(샬럿의 <제인 에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 등)을 읽어보았거나 이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를 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뭐 읽지 않았다해도 상관없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그리고 사회적인 편견을 보란 듯이 떨쳐버리는 강한 여성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료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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