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룸살롱 공화국 ㅣ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접대와 향응, 그리고 성접대 기사가 나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었다. 어느 쩍 이야긴데 아직도 저런 기사가 나오냐는 것이었다. 왜 반복되는 지에 대해서 정말 무지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좋은 인간관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부대끼다보면 자연 정이 들게 마련이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사회다보니 인위적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나라의 서글픈 현실이다. 예전에 어떤 아이스크림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아마 접대하는 사람과 접대 받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딱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든다.
책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 온 요상한 요정문화에서부터 시작한다. 해방정국에 요정은 적산(적의 재산, 일제에 강점된 우리 재산을 말한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미군정에 줄을 대는 더러운 자들의 정치공간이었다. 뇌물이나 매수를 뜻하는 속어 '사바사바'라는 말도 이때 처음 생겨난 말이었단다. 이후 이런 접대문화를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문화에 연루된 사람들 때문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 된 내용이다.
책에 <한겨레 21>에 인용된 기사에 따르면 접대를 둘러싼 세 가지 시선 , 즉 접대하는 남자, 접대하는 여자, 접대 받는 남자의 시선이다. 이는 부패의 연결고리가 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의미한다. 아니 접대와 향응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근절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그리고 그 법을 집행해야하는 검찰과 경찰, 법 집행에서 최종 판결을 하는 법관 등이 모두 향응 문화에 익숙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접대비'라는 항목이 존재했겠나. 미국이 로비스트를 법으로 양성화했다면 우리나라는 '접대'를 공식적으로 양성한다는 의미다.
더 불쾌한 것은 신문이나 방송에 언급되지 않는 더러운 접대문화가 더 많다는 데 있다. 특히 공무원을 접대하는 데 사용하는 신종 수법은 날로 발전한다는 데에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집에 두고 오게 하는 건 기본이고, 룸살롱 술값을 당일 계산하지 않고 며칠 뒤에 계산해서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것 등이다.
바람 피워도 남자의 능력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사회, 권력이 있으면 법을 어겨도 눈감아줄 수 있는 사회, 룸살롱으로 서민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대단한 대통령이 있는 나라, 지금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노골적으로 '접대비 '라는 용어가 기분 나쁘다고 바꿔달라고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이 있는 나라, 그렇게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였다는 것이 기분 나쁘다.
굳이 연예계 성상납 파문을 던진 고 장자연씨 사건이나,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검사와 스폰서'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이 더러운 문화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룸살롱에 출입하지 말라는 청와대 지시가 불과 2년 전에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책 한 권 읽고 난 뒤에 이렇게 기분 나쁜 경우는 처음이다. 책 저자가 의도한 것은 이런 저질 문화를 뿌리 뽑아야 된다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대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너무 보도나 발표에 의존하다보니 정작 있어야할 저자의 견해가 빠졌다. 물론 책 여기저기에 있는 문구에 저자의 주장이 담겼을 수도 있다. 아니 불편한 주장으로 또 다른 갈등(법정까지 가는 문제)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보도나 발표를 인용하지 않고 저자의 견해를 밝혔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런 더러운 문화를 지금 근절하지 않으면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제발 표 좀 제대로 찍으시라고. 나 혼자만 제대로 찍는다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이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통해 배웠으리라 생각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