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숲> 인간실격

인간실격 외 ㅣ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소설이 이렇게 쉽게 몰입하게 하고, 이토록 처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세상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지극히 당연한 욕구를 포기해버리고 현실에서 자꾸만 도망치는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인간 본성일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에 몰입하다보면 어느덧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인간실격』은 주인공 요조가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는 이방인이라는 데서 시작한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는 부모 형제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내부에 숨기고 겉으로는 거짓으로 위장하면서 살아간다. 스스로 이를 광대짓이라 규정하면서 철저하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작품은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면서 세 편의 수기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수기를 제구성한 '나'라는 관점에서 처음 요조의 사진을 보았을 때의 감정으로 머리말을 구성하고, 이 작품의 원본에 해당되는 3편의 수기를 손에 넣게 된 배경을 후기에 배치했다.

  소설과 해설을 다 읽고나면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 사이에 많은 공통점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출신신분에서 닮았고, 한 때 좌익사상에 빠졌다는 것이 그랬다. 그리고 약에 중독된 적이 있었고, 이 때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는 사실이 그랬다.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말해준다.

  해설에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성장배경에 대해 어려서부터 잉여인간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이것이 현실세계에 반항하는 의식으로 이어져 좌익사상에 심취할 수 있었다지만 오히려 자신의 출신신분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작가가 약물중독에 빠져 이를 치료하기 위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당하면서 주변사람들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고, 이 무렵 동거하던 동거녀가 불륜사건을 일으키자 더 이상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스스로의 자격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작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잡지 <덴보(展望)> 1948년 6월호를 통해 첫 선을 보였고, 모두 3회에 걸쳐 연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품을 같은 해 3월 10일부터 5월 12일까지 집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자살한 것은 6월 13일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다 집필해놓고 마지막편까지 발표되기도 전에 자살했다는 것이다. 결국 해설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자살을 전제로 쓴 작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두려움이 없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계속 현실도피만 하고 죽기만을 바란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인간자격을 박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스스로의 용기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주변에 믿음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내가 먼저 주변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믿고, 또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위해 노력해야 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