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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ㅣ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바진(巴金)은 루쉰, 라오서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며,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봉건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5·4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사상에 눈을 뜨고 러시아 아나키스트인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영향을 받아 아나키스트로 활동을 하였고,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구국 항일운동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다.
『차가운 밤(寒夜)』는 바로 항일전의 시기인 1944년에 쓰기 시작하여 1946년 말에 완성한 작품으로 바진 최후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국민당 정부가 충칭에 피난 와 있었던 시기에 전쟁으로 인해 민중이 고통 받고 있었던 시기이며, 국민당의 실책으로 인해 많은 지식인들 사이에 패배감과 무력감, 그리고 허무주의가 폭넓게 깔려 있었던 시기라고 작가는 술회한다.
주인공 왕원쉬안(汪文宣)과 청수성(會樹生)은 부부로 대학시절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희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지식인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충칭으로 피난 온 이후 하루하루 어려운 생활을 영위한다. 왕윈쉬안은 적은 보수지만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하며 가족의 생활에 힘을 보태지만, 그의 아내 수성은 은행에 근무하며 남편보다 보수가 높고 대부분의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이 가족에게는 고부간의 갈등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하게 전개된다. 그 중간에 있는 주인공 왕원쉬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력한 남편일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왕원쉬안은 폐병에 걸리게 된다. 차츰 일본군이 충칭까지도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에 피난을 가야할 지 말지 갈림길에 서게 된 부부는 결국 아내인 수성이 은행 상사인 천주임의 권유로 가족을 두고 혼자 란저우로 피난가게 되고, 남은 왕원쉬안은 폐병이 일시 나아지다가 다시 악화되고, 아이러니하게 그토록 소망하던 일본이 패망하지만, 승전경축행사가 있는 날 결국 죽게 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심한 허무주의로 일관한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사이에서 끝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내를 떠나보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가지 말라고 애원하면서 겉으로는 그런 내색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나 아내가 그냥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며, 흐느껴 우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무능함을 시종일관 변함없이 그려내었다.
바진은 자신의 글을 통해 이 소설에서 '곧 붕괴할 구사회, 구제도, 구세력이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는데도,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는 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갈등을 통해 봉건 사회와 봉건적인 가정 윤리가 어떻게 개인과 가정을 말살하는지를 그려냈지만 정작 어머니는 끝내 아들이 죽어 가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해설에 따르면 소설에서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책임은 왕원쉬안과 부인, 어머니에만 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짙은 안개로 묘사된 배후의 존재에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중국을 대표해서 세계적인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이유를 이 소설 한 편만으로도 충분히 알 것 같다. 지속한 허무주의에 빠진 한 지식인의 심리적인 묘사를 읽으면서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딱히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허무주의에 빠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