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러브 - 지혜의 사랑과 교육의 토톨러지
조무남 지음 / 럭스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오늘날 플라토닉 러브란 순결한 사랑이나 짝사랑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또 육체적인 사랑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본래 플라토닉 러브는 '지혜의 사랑'의 그리스어인 '필로소피아'가 함축하고 있는 사랑이었다 한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삶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혜를 사랑한 소크라테스. 그는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았고,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런 그가 스스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고, 그래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아고라로 나갔던 것이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그런 뒤에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일은 사랑과 교육의 논리에 의해서였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린 말 같기도 한 이 명제는 신과 인간의 사랑은 교육의 역사를 통해 시작되었고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조무남 교수의 『플라토닉 러브』는 '지혜의 사랑과 교육의 토톨러지' 라는 부제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책 속에 삽입된 각종 사진 자료와 특정 단어에 대해 별도의 설명을 <사색의 방>이라는 코너로 배치한 것도 돋보인다.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심포지엄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에로스를 찬미하는 부분을 설명하는 곳이었다. 인간을 만든 신은 원래 남자, 여자, 그리고 남녀 한 몸으로 된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 그런데 남녀 한 몸으로 된 사람들이 가장 힘세고 능력이 뛰어나, 남자와 여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하는 바람에 남녀 한 몸으로 된 사람들을 신이 둘로 나누어 반쪽이 되게 했다는 것. 그래서 원래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그리워했다는 것이고.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심포지엄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술잔치를 뜻했다는 것은 조금 뜻밖이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잔치'나 '향연'에 가깝다는 심포지엄. 고대 그리스에서 밤 세워 포도주를 마시면서 담론을 벌이는 것이 심포지엄인데 오늘날 학술대회의 한 형식으로 축소되고 만 것이다.

  꼭 고대 그리스의 역사극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재미난 대화 장면들을 읽다보면 바로 그 현장에 내가 있는듯한 사실감이 들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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