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속에 갖힌 청춘 남여의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사이에 직업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마는 이 소설과 같이 해커이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준성과 모델인 서진의 만남이 조금 어색하다고 느꼈다. 해커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책의 표지에 조각나 있는 거울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대를 잃은 날부터』라는 제목은 또 무슨 암시를 주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읽기를 시작한 소설. 그런데 거울에 대해서는 의문이 풀렸다. 방 가득히 둘러싸고 있는 거울은 모델로 출세하기 위해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서진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그러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지? 그것은 아마도 소설 속의 두 청춘이 서로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번짐이 아닐까? 한방주의가 만연해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진이 바라는 삶 역시 한방주의였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여자 서진. 비열한 욕망의 화신들인 감독 육정수와 한호섭에게 농락당하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자신을 바라보며 언젠가 이루고 말 한방주의를 기대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더 깊은 나락에 빠져들 뿐이었다. 결국 준성의 순수함에 자신의 잘못된 삶을 버리지만 그 순간 마약사범이 되어버리고 만다. 톱 모델이나 화려한 영화배우로 간택받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은 바람피는 것과 다르겠지만 같이 동거하고 살고 있는 연인이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준성과 서진은 서로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라는 걸 알기에 어쩌면 서진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르는 척하며 같이 지내는 생활을 연장하고픈 것이었다. 결국 거울 감옥이 아닌 진짜 감옥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되었고, 서진과 준성 사이에는 막막한 기류가 흐른다. 잊으려고 하는 서진과 잊지 않으려는 준성. 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단숨에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작가는 사람이 아무리 부도덕하다해도 진정 그 사람을 사랑해 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잔잔한 감동을 준다. 깊어가는 가을, 메마른 정서에 잔잔한 감동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