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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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오른쪽에 못생긴 난쟁이 여인만 환하게 강조하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얼굴이 정말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잘생긴 남자 이야기. 못 생겨서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여자. 그런데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잘생긴 인기배우를 아버지로 둔 주인공. 하지만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떠났고 남은 가족은 슬픔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데,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두 사람,그녀와 요한. 세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분명 처음에는 사랑이 아닌 일상으로 시작되었고, 동정심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는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전반적으로 기본적인 글쓰기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한 부분은 약간 충격적이다. 시적 표현 같기도 하지만 한 어절이 강제로 나눔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언어의 유희. 우리말인데도 우리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더 기발한 것은 주인공 '나'와 '그녀'의 대사를 따옴표 없이 색깔로 구분한 것. 파랑색과 분홍색으로 구분한 이것도 일종의 형식 파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속의 소설 형식도 마찬가지다. 참 재미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오래 전에 토론되었던 책이었는데 당시 뒷부분을 조금 남겨둔 채로 계속 방치하고 있다가 문득 눈에 보여 마저 읽게 되었다. 그래서 막바지 기막힌 반전을 보면서 역시 소설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 소설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 색다른 소설을 읽는 묘미랄까..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Trout(송어) 라는 곡이 있다. 분명히 나는 학창시절에 숭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게 숭어가 아닌 송어란다. 숭어는 바다에 사는 어류이고 송어는 민물에 사는 어류라 분명히 다른 어종이란다. 이런 어이없는 일은 일제의 잔재와 음악인들의 무관심이 있기에 가능했단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잘못 번역한 것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금까지 사용한 것이다. 뭐 그래도 내년(2011년)에 각급 학교에 적용되는 모든 음악교과서는 정확한 표기로 고친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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