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유토피아
김영종 지음, 김용철 그림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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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유토피아』는 프레시안에 ‘김영종의 잡설’로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총 33회에 걸쳐 연재된 내용을 일부 순서만 약간 바꿨을 뿐 대부분 내용 그대로 책으로 펴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앞서 출간된 <헤이, 바보예찬>의 주석서 격이란다. 에라스무스의 <우신 예찬>을 현대의 글로 다시 썼다고는 하지만, 읽으면서 많이 난해했던 기억이 난다.


책은 다큐멘터리로 방영한 <파브르의 곤충기>중 양의 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미의 몸 속에 들어가 뇌를 장악하는 간디스토마 기생충 코만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미 속에 들어간 유충 중 아기 코만도 한 마리가 개미의 턱을 여닫는 신경 근처에 자리 잡고 개미의 뇌를 통제하며, 매일 저녁이 되면 양이 좋아하는 식물의 꼭대기에 올라가 양이 먹어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아침이 되어 코만도가 개미의 뇌를 놔주면 개미는 정상으로 돌아가 다른 개미들과 어울린다. 저자가 굳이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아기 코만도가 개미의 뇌를 낮 시간이나마 놔주기라도 하지만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그런 자비조차 베풀지 않기 때문에 개미보다 더 비참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애니미즘의 이야기다. <시턴 동물기>로 유명한 시턴이 쓴 <인디언의 복음>이라는 책을 인용한다. 한 사람의 백만장자와 백만 명의 거지를 만드는 현대문명은 실패했으며, 늦게나마 자연과 소통 했던 인디언의 메시지가 옳았음을 고백한다. 사실 미국의 역사가 서구 기독교문명을 앞장세워 ‘빛과 진리의 이름’ 아래 1억 명이 넘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한 역사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유토피아는 어떤 사회일까? 처음 유토피아를 주창한 토마스 모어가 추구한 유토피아는 섬뜩하지만 지금의 미국과 너무도 흡사하다. 미국 사회가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토피아는 허구이며 이를 갈망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왜 진보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나름의 분석을 내 놓는다. 덧붙여 수구세력이 건재한 이유와 뉴라이트가 나타난 현상까지도 밝힌다.


저자는 사회주의적인 이상을 찾는 진보를 향해 일갈을 던진다. 맑스와 엥겔스가 쓴 자본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틀렸다는 것. 그것은 바로 노동시간의 개념인데, 모든 노동자는 같다는 전제, 즉 ‘인간의 동일성’을 출발선상에 두고 시작하는 것이란다. 이는 사람마다 다 개성이 다른데 이를 동일시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제 자체가 오류라는 거다. 또 산업자본주의가 취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진보진영에서 그대로 따라한다는 지적은 나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념 - 비판 - 대안 - 토론 - 계획 - 실천 이러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용산참극과 파우스트’ 부분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의 내용도 그렇지만 파우스트가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그곳에 살고 있던 노부부를 희생시키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죽기 직전 황제에게 하사받은 해안지대를 매립해서 그 곳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인류애 가득한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에 방해가 되는 노부부의 오두막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라고 악마 메피스토에게 명령을 했고, 악마 메피스토는 이주명령을 완강히 거부하는 노부부의 오두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불이나 노부부가 희생되어 버리는 것.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어떤 행위든 정당한지 아닌지는 진실의 정당성, 합리적 정당성, 기술적 정당성 이렇게 세 가지를 통해 따진단다. 그런데 용산참극에 대입하면 뉴타운 건설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도 될 만큼 중요한 사업이었는가 하는 내용은 진실의 정당성에 해당되는 중요한 이야기지만 논의된 적도 없을뿐더러 무의미한 것으로 방치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과잉 철거라는 기술적 정당성이 결여되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합리적 정당성으로 우기는 거다. 어쩌면 집단체면에 걸려 우리가 묵시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한다. 세상을 바꿀 기회는 아직도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강력하게 경고한다. 마지막 남은 기회라는 것. 그리고 이를 놓쳐버리면 종말임을 경고한다. 지구촌의 운명은 전 세계가 ‘인디언보호구역’의 감시체제에 놓일 것이고, 사회의 운명은 조지오웰의 <1984>의 감시 체제하에 놓일 것이며, 개인의 운명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환상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착찹하다. 그리고 책 속에 많은 책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 몇 가지 책은 꼭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과 관련이 있는 책이지만 아직 출간이 안 되었을 것으로 분류되는 <심씨부녀전>이라는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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