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는 방법이 사람마다 같을 수는 없다. 청춘의 시기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내 자신에게 수도 없는 많은 약속들을 한다. 다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꺼다. 지키지 못 할 수 많은 다짐들. 그렇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약속은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신경숙 작가를 처음 접했던 것은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이었을 것이다. 원북 원부산에서 선정된 책이기에 내가 근무하는 곳 여러 곳에 비치되었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모임에서 정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정윤이라는 나를 통해 재미 없지만 의미있는 시대를 관통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암울했지만 희망을 그렸던, 그래서 반쪽짜리지만 희망을 현실로 바꾼 역사를 이야기 한다. 나는 80년대 초반을 살았다. 희망이 현실이 되지 못한 사회, 오히려 그런 바꿀 수 없는 현실때문에 좌절했었다. 그래서 명서와 윤이 그렇게 현실을 바꿔보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386세대라는 용어가 엊그제 이야기 같은데 어느새 486세대라는 말이 되어 버렸다. 늦게 동참한 노동운동에 의문사한 사람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고, 군 의문사에 대한 이야기도 관심있게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다시 읽게 된 것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 들기도 한다. 단이와 윤, 명서와 미루. 어쩌면 가족이 아니라도 가족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어린시절부터 가족 못지않게 같이 자란 경우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지만 말이다. 책 속에서 명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푸념을 늘어 놓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물론 원하는 세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소설 속에서 꽃집 아주머니의 말씀이 가슴을 때린다. "시위 안 해도 되는 세상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해...... 미안하다구." 예수를 업고 강을 건느는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강을 건너게 해준 것이 예수인지 크리스토프인지에 대한 답은 각 자에게 있지 않을까. 윤의 이야기처럼 "오늘을 잊지말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내가 그쪽으로 갈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작가의 말처럼 20대 새파란 청춘에 꼭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나? 난 사십대 후반이고 처자 있는 몸이니 조금은 부담이 없다고 봐야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