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냉전의 추억 -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
김연철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해가 지고, 달이 뜨는구나, 그래, 이것이 달빛 정책이구나, 금강산 가는 길이 끊기고, 그 길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철마는 다시 꿈을 꾸고, 북으로 가는 철로는 녹이 슬겠지, 개성 공단도 문을 닫고 있구나. 그러는 사이 이산의 한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세상을 뜬다. -p7(머리말 첫 문단)
『냉전의 추억』은 북한과 관련하여 재계(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에서는 대북사업을 경험했고, 학계(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정책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으며, 정계(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에서는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다룬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지금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김연철소장이 쓴 책이다.
책은 현 MB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에서 지나온 분단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이를 성찰하여 가야 할 길이 무엇이며,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자는 취지에서 쓰여진 책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통해 대북정책의 잘못이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모두 스물 네 가지의 이야기를 만남의 기억, 대결의 풍경, 교류의 추억, 협상의 교훈, 협력의 미래 이렇게 다섯 편으로 나누지만 아마도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만남의 기억편에 나오는 정상회담을 위해 서로 주고 받았던 밀사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제일 앞에 배치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시절은 '잃어버린 5년', '공백의 5년'인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서슬 시퍼렇던 박정희 ,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남북대화의 창구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태우 정권 시기가 163회로 가장 많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대화가 고작 28회에 불과하다. 그 당시 제대로 된 대북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아마 한반도에 평화무드는 더 일찍 찾아왔을 것이다.
책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분이 여러곳 있다. 이산가족 상봉에 얽힌 이야기가 그랬고, 남북 단일팀 이야기가 그랬다. 특히 1991년 4월 29일 일본 지바의 니혼 컨벤션 센터에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여자 경기에서 코리아 팀이 우승하면서 올라간 국기는 태극기도 인공기도 아닌 '한반도기'였고 남과 북의 애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퍼졌다는 대목에서 그날의 감격이 느껴졌다. 당시 현정화선수는 1993년 세계 대회 복식에서 다시 한번 더 우승하고 은퇴자고 북녘의 리분희 선수와 다짐했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계가 악화되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훗날 현정화는 "정치하시는 어른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원망했단다.
남북관계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통해 지금까지 있었던 남북 분단의 역사를 기억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고 더 많이 고민하기를 바란다. 특히 이 냉혹한 시기에 남북화해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평화의 기억으로 공존의 시대를 열 젊은 청춘들에게 말이다.
현 정부의 대북 강경 일변도의 정책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설마 냉전 시대로 돌아가겠어? 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냉전의 기억이 다시 현실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다음 두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무능한 자는 전쟁의 공포를 자극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위기를 막을 대책을 찾는다. 무능한 자들은 언제나 보수의 옷을 입으려고 한다. 한국에서 색깔은 실력을 감추는 옷이다. 오늘도 실력은 없지만 색깔이 강한 전문가들이 설친다. 오늘도 무능한 정부는 공포를 뿌린다. 망각의 안개처럼. 그러나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무능과 오기가 얼마나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 -p152 |
맹수 사이에 있는 들개는 온순해 보이고, 토끼장에 들어온 양 한 마리도 사나워 보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군 출신이던 파월 장관, 아미티지 부장관 혹은 프리처드조차도 온건하게 보였다.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고, 대북 정책에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던 네오콘들 가운데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인들은 전쟁에 신중하다. 일단 칼을 빼면, 피가 묻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무책임한 칼춤을 추는 자들은 대부분 전쟁을 모르는 자들이다. -P2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