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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80년대 중반쯤 되었을까. 군대 가기전에 농지개량조합(지금의 농업기반공사)에 입사시험을 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PC방이나 찜질방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게 잘 수 있는 곳이 독서실이었다. 그때 같이 올라간 선배랑 독서실에서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우연히 제법 나이 든 수험생 두 명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꼭 이루어야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두 가지라고 했다. 그로 부터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과연 이 두 가지는 이루었을까?
많이 불편해 하면서도 단숨에 읽었던 책이다. 조정래 선생의 『허수아비 춤』은 읽으면서 소설이라고 몇 번을 다짐을 하면서도 지금 어디선가 일어나는 일이라는 착각이 든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수도 없이 들어온 단어들. 이를테면 차명계좌, 로비, 불법상속, 비자금, 심지어는 뇌물이나 상납. 더우기 추악한 이런 일들을 숨기기 위해 어떻게 우리들을 속여왔는지까지 나열되어 있기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 천박한 천민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또 대부분이 선망하던 상류사회가 결국 우리가 사는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오히려 더 비열하고 더러운 사회라는 사실이 예상되었던 터라 이 역시도 놀라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소설 속의 강기준과 박재우와 같은 사람들이 되고 싶을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또는 사주의 신뢰를 바탕으로 계열사 사장 자리를 꿰차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우리들이 많기에 노예임을 망각하는 비극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국에는 기업이 투명경영을 하기 때문에 탈세할 일이 없다. 또 비자금 따위 조성하는 경우도 없다. 특히 번 만큼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에 반해 탈법, 탈세를 하지 않으면 사업 못해먹는다는 기업가가 지천에 늘려 사회적 불신의 골이 이미 깊을만큼 깊다.
선생의 바램처럼 이런 소설이 완전히 필요 없게 될 세상이 오기를 빌어본다. 그래서 강기준과 박재우 같은 사람이 되기 보다는 전인욱, 허민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