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
주원규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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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나 군인집단은 공권력에 속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가 허용하는 심각한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을 보면 권력자의 의지가 개입되는 과정일 수도 있고, 그 집단을 이끄는 지휘관의 출세욕이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정치권이 재벌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또 그렇기 때문에 경찰이 정치권이나 재벌을 상전과 같이 모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학창시절 윤리나 도덕을 통해 선(옳음)이라고 배웠던 것들을 사회에 진출하면서 애써 외면하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나 또는 내 가족을 중심으로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상관없다는 식으로 일관하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 아무 이유 없이 강도나 폭행을 당하는 사람을 못 본 체 지나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괜히 남의 일에 끼어 들었다가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는 것일게다. 그러다 보니 자연 현실과 타협하는 법과 자기 합리화하는 기술만 늘었다. 그러나 남의 권익을 같이 지켜주지 못하면 결국 내 권익도 유린당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되는데 안타깝다.

 

  정민우는 신학대학을 나온 세명교회 전도사다. 신도 2만이 넘는 초대형 교회인 세명교회는 조창석 목사가 초대 담임목사이지만, 그에겐 조정인이라는 미국 유학간 망나니 아들이 있었다. 신학이 아닌 경영학을 공부하고 펀드 매니저 생활 중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 투옥되고, 여타 구설수에 올랐던 그가 어느 순간 세명교회에 목회자 신분으로 나타난다. 부목사가 된 조정인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담임목사를 해야 하는데 세습을 허용하지 않는 일부 장로들에 의해 설교를 통해 검증을 받게 된다. 이에 정인은 여동생 수희의 약혼자인 민우에게 설교 원고를 대신 써주는 대신 수희와의 결혼과 목사 안식을 약속받는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밖에서는 철거민들의 집회가 열리고 집회장에서 민우는 예전에 같이 신학대학을 다니던 친구 윤서를 보게 된다. 이후 윤서를 따라가서 윤서가 찾았다는 재림 예수 한경태를 보게 되는데 ……

 

  소설 <망루>는 교회 권력의 부당한 세습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교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욕망으로 뒤틀린 현실 속에서 종교가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능한 신의 한계만을 보여준다. 마지막 벼랑 끝에 몰리면서도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신의 한계를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의해 죽어가는 무능한 신. 재림 예수다.

 

  재림 예수는 2천 년 전의 열성당원 벤 야살에게 발견된 신이지만 로마 제국에게 핍박받는 자신의 민족을 구하지 못하는 무능한 신이었다. 신의 전능함으로 얼마든지 로마 병사를 벌할 수 있음에도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 보이는 무능한 신. 그리고 2천 년 후의 열성당원 김윤서(전철연의 대표)에게 다시 발견되는 재림 예수. 미래시장에서 배일에 쌓여 있는 한경태라는 인물. 그러나 그 역시 철거민들에게는 작은 기적을 보이지만 강제철거를 위해 출동한 경찰특공대와 용역깡패에게는 신의 전능함을 보여주지 못한 채 망루에서 생을 마감한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가해자와 피해자, 가진 자와 잃은 자,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적인 구도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우리 모두에게 통열한 일침을 가한다. 누가 어떻게 왜 그렇게 만들었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랬다. 언제나 결과만이 남았고, 그 결과만을 가지고 모든 일을 판단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작년 1월에 일어난 용산참사 역시 참사가 일어난 결과만이 대서특필되고, 그에 따라 누가 잘못했냐는 공방만 지겹도록 한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예수. 하지만 그 역시 망루에 올라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진 철거민들을 구하지 못했다. 책에서 재림 예수는 로마 제국의 병사들 또한 자신의 창조물이기에 자신의 손으로 심판할 수 없다는 엉뚱한 궤변으로 이 모순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한계로 인해 벤 야살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자신의 창조물에게 죽음을 당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신이다. 결국 없는 사람들은 신에게 조차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결론만 남았다.

 

  교회라는 용어만 들어도 혐오감을 느끼게 한 목사들이 있다. 신의 대리인으로 전달자라는 신분으로 자신을 신격화하면서 이를 무기로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 그래서 작가는 그런 위선이 싫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종교공동체를 지향하는 대안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한 번쯤은 사고 현장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아니 기회를 애써 외면해 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망루>라는 소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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