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담배를 끊은 지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다시 피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꿋꿋이 견뎌내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내가 한심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대체재의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 중 첫 번째 순위를 꼽으라면 술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마시던 술이 두 배 가량 늘었다. 다음은 음식이다. 입맛이 돌아온 탓이다. 덕분에 지금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 버렸다. 몇 번이고 식사량을 조절해 보려고 노력도 했고, 술도 멀리하기 위한 방법도 연구 해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모질지 못한 내 성격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독서모임에서 내 눈에 쏙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그래 맞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이버 해피빈에서 콩저금통을 기부하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월 3만원만 있으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어린이 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도 어려운 이웃이 많은데 뭐 잘 산다고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린이까지 신경을 쓰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외면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일 하려고 하면 그렇게 재를 뿌리는 거다.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못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 책을 쓴 '장 지글러' 교수는 스위스 출신의 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이 책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많은 세계지역을 돌면서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불편한 진실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만 아들 카림과의 대화형식을 빌릴 뿐, 내용은 온통 기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담고 있다.

 저자가 밝히는 물음(책 제목)에 대한 해답은 여러가지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심각한 부정부패, 기아를 악용하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 환경오염으로 인한 환경난민의 증가, 치유되지 않는 식민지정책의 상흔, 전쟁 등이다. 여기에는 강대국들의 횡포도 한 몫 한다.

 고전 경제학에서 자주 다루는 부분은 맬서스의 인구증가에 대한 논문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반해 식량증산은 그기에 못 따라가기 때문에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선진국이나 기업가는 기아로 죽는 사람을 자연도태라고 본다고 했다. 결국 이 말은 없는 사람은 죽어줘야 있는 사람이 살 수 있다는 말이니 혀를 찰 노릇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다국적기업과 선진국의 개입이다.
저자는 중남미의 아옌데의 비극을 예로 들어 다국적기업과 선진국이 개입해서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단순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란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스위스의 세계적인 분유회사인 네슬레를 지목한다.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것이 당시 아예데가 대통령선거에서 내건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분유시장의 생산, 유통 등 모든 것을 독점하던 네슬레에서 거부를 해 버린다. 공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사겠다는데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정책을 펴는 아옌데를 미국에서도 가만 보고만 있지 않았다. 1973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피노체트 군부쿠테타를 도와 정권을 교체해 버린다.

 지구상에는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된다. 그런데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먹고 남을 식량을 기아에 허덕이는 곳에 주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다국적기업이나 선진국에서 수천마리의 소는 죽여 땅에 묻어버리지만 이를 기아에 허덕이는 곳에 주지 않는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그리고 선진국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신자유주의라고 저자는 밝힌다. 민영화, 규제철폐, 거시 경제 안정, 예산 감축으로 이야기 되는 신자유주의는 결국 경제, 사회, 문화적 인권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희망을 전지구적 민간단체에서 찾으려고 한다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만이 대안이라고 밝힌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기에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아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조금은 안도가 된다. 연대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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