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타임POP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내 글씨는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6학년 올라가면서 같은 반에 붓글씨를 잘 쓰는 누나를 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펜글씨 교본이나 서예교본 등의 책들이 서점에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이 대우받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누나가 써 놓은 노트를 가져다 위에 덮어쓰기를 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연습했었다. 나는 그렇게 악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글씨를 잘 쓴다는 것과는 다르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나는 참 부럽다. 그래서 내가 책을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는 이유도 글 잘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내 눈을 들어온 한 권의 책. 제목부터가 이상하다.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글쓰는 것은 창작인데 베껴 쓰다니. 무슨 뚱딴지 같은 말?

 그런데 책 서문에 있는 저자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배우든 선생님을 따라하지 않고 배우는 것은 없다는 말.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모두 베껴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말인가? 책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치열하게 글쓰기를 했지만 10년 가까이 재능이 없다는 말만 들었던 이희성 작가의 예다. 그는 시련의 세월에 2,50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150여 권의 책을 베꼈단다. 그 훈련 덕분에 지금은 40여 권의 책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단다.

 글쓰기 책이라 짧은 강의 형식으로 내용은 이어지고, 대신 각 강의 뒷부분에 정말 제목처럼 베껴 쓸 글과 베낄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내용도 재미있다. 책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글은 글쓰기를 배우던 수강생이나 예비 작가의 글이기 때문이다. 예제문을 쓴 수강생과 대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강의는 처음부터 폭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바로 내 옆에서 저자에게 신랄하게 깨지는 수강생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강의의 내용은 베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베끼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암시다. 아니 베끼기는 기본이라 거론 않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어렵다. 사실 저자는 줄바꾸기 하라는 것으로 첫 강의를 시작한다. 그것도 문장의 첫 칸은 비워야 읽기가 편하단다. 그러면서 강의의 끝자락에 [글쓰기 해결책 01] "세줄이 넘어가면 (되도록) 줄을 바꾼다" 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린다. 이런 형식의 강의가 30강이나 되지만 베끼기만 이야기 하는 것은 3강 한번 밖에 없다.

책을 읽는 방법도 나온다. 한 권을 읽더라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란다. 책에 낚서도 하고 밑줄도 그어가며. 대신 그럴려면 돈 주고 사서 읽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속독은 아니지만 다독 스타일인 나랑은 책 읽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 뒷장에 또 친절한 해결책을 정리해 놓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거야! 글쓰기 해결책 30>. 맨 마지막 말이 압권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베껴 쓰기다 !" 그랬다. 베끼기는 기본이었던 것이다. 

책만 읽었지 베껴 쓰기는 하지 않았다. 큰 아들이 '문예창작과' 올해 입학했기 때문에 혹시 이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나 싶어서다. 관심 없다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중간에 베껴 쓰는 공간도 채우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에는 밑줄도 긋고. 책을 다 읽을 때 쯤이면 예비작가 정도는 아니더라도 수강생 정도의 수준은 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은 사람,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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