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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평점 :
<언니들, 집을 나가다>는 독서모임에서 토론이 끝나고 북크로싱할 때 제목이 특이해서 덥석 물어버린 책이다. 언니네트워크(언니네, http://www.unninetwork.net)에 올려졌던 글들로 구성된 책이다. 언니네트워크는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곳으로 획일화된 남성중심주의에 대항해 여성친화적 네트워크 환경으로 모든 종류의 성적 차별 및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함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 2000년 4월에 설립했으니 올해로 벌써 10년이 넘은 곳이다. 홈페이지에 방문하면서 꼭 여성들만의 공간인 기숙사 같은 곳을 몰래 엿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속물인가 보다.
책은 첫머리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비혼을 선고하노라'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신음을 뱉었다. 마누라가 못보게 책을 숨겨야지 하다가 머리말을 다 읽고야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이 책의 의도가 '모든 여성(혹은 남성)이 결혼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그저 '비혼할 자유를 허하라'라는 소박한 바램으로 시작했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 기획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판단된다. 삶이라는 무수히 많은 스펙트럼 만큼이나 비혼 생활 역시 다양한 인생의 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물론 가부장적인 결혼문화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비혼은 환영받기 보다는 유별나게 보는 시각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삶을 선택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결단을 필요로 한다. 결혼해서 아이 둘이나 키우는 내 입장에서 보면 선뜻 와 닿지는 않는다.
책은 독립된 인생을 위해 가족과 이별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비혼 생활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비혼 생활 역시 결혼해서 사는 것이랑 별반의 차이가 없음을 보여 주고,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들도 다양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자사는 여성들 또는 여성들만 모여 사는 경우에 듣게 되는 질문들. 대체로 늙거나 병들면, 그리고 도둑이나 강도가 들어오면 어쩔래 하는 뻔한 질문들에 대한 여성들이 반박이 이어진다. 뒷 부분에 집 구하기 노하우도 있고, 댄스나 호신술,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여자들끼리 할 수 있는 모임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들을 읽으면서 비혼 생활도 인생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인생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해 버리면 거부감이 없이 수긍할 수가 있다. 다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아직 우리 사회가 여성 혼자 또는 여성들만 모여 살기에는 불편이 많이 따른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그래서 책에서 처럼 여성 공동체 내지는 비혼 공동체가 생겨나고 그런 공동체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이 성숙되어 공동체 생활이 불편함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문득 프랑스의 결혼제도가 떠오른다. '팍스(PACS, 연대민간계약)'라고 하는 제도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법적인 결혼이 아닌 계약 동거 정도가 되겠다. 서로의 개인재산을 인정하면서 동거하는 프랑스식 동거.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정답은 법적인 부부와 차별이 없다. 프랑스의 공보육과 공교육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2004년도 출생율이 1.9명으로 유럽 최고다. 우리나라는? 부끄럽지만 2004년도 1.16명으로 세계 최저였다. 하긴 사회적 책임은 무시하고 무작정 여성들에게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워라고 하면 어쩌라고? 그러라고 했다가 언니들에게 2009년도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분이 계시다. 누구냐고? 여기 가서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