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구텐 백, 장애인을 위한 아름다운 재활병원 짓는 데 자신의 인생을 건 푸르매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선생은 안정된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장애인 재활병원에 매달리게 된 사연은 이렇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사회통합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을 연구하기 위해 2년 동안 뮌헨대학 정치학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수학했는데 귀국을 앞두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났던 영국 여행도중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사고로 부인이 크게 다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이후 영국병원에서의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부인을 독일로 데려가 다시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그러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보다는 귀국해서 우리나라에서 치료를 받는데 나을 것같아 귀국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편견과 차별 등의 현실을 목격하고는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장애인 재활병원을 세우겠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유럽교포 사회에서 서로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동포문화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국만리에서 같은 동포는 정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선생이 비꼬았듯이 세계적인 천재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면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부분은 정말 우리 사회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을 주저없이 설명한다고 느껴진다. 더구나 2차 계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정하는 얄타회담의 주역 세사람이 모두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놀랐다. 유세도중 소아마비가 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 루즈벨트, 언어와 지각장애자였던 처칠은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인 스탈린은 10년 동안의 체포, 구금, 시베리아 유형을 겪으면서 한 팔을 못 쓰는 장애인이 되었단다. 결국 선생은 장애인을 구분하지 않는 평등하게 바라보는 관용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인물의 배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우리집에 장애인이 둘 있다. 나와 작은 아들이다. 나는 지체장애를 작은 아들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나는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기에 살아가는데 걱정같은 것을 하지 않지만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작은 아들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배려하는 관용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에서 장애인들은 건강한 우리를 대신해서 아파한단다. 그래서 그 아픔을 같이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그런 나라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