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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여자 - 푸른 파도 위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김상옥 지음 / 창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한 여자가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여자. 여고 시절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진도북춤에 빠져 국악을 전공하게 된 여자. 하지만 기구한 운명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나이 사십 되도록 제대로 된 사랑 한번 해 보지 못한 여자. 여자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북춤을 통해 잊으려하지만 오히려 켜켜히 쌓인 한이 나타나는 여자. 그녀의 이름은 은서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역시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지만, 애를 못가진다는 이유로 부모에게서 쫓겨난 아내. 그는 아내를 찾기 위해 20년간 전국을 유랑했고, 결국 아내를 찾았지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는 엇갈린 운명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그 아픔을 잊으려 진도 바닷가에서에 와 생활하는 남자. 그의 이름은 하윤이다.
은서와 하윤을 만나게 해주는 끈은 낚시다. 바다를 배경으로 둘은 낚시를 통해 처음 만났고, 낚시를 통해 인연을 맺어간다. 기구한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비슷했고 아픔을 간직하고 산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는 과거를 가슴 한가운데 간직한채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반면 남자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하얀 기억 속의 너>라는 책을 통해 털어버리려고 했지만 대신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책을 다 읽고 난뒤에야 김상옥 작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랑을 그려내는 작가라는 소개글이 이해가 간다. <하얀 기억 속의 너>라는 책을 소설 속에서 소개하는 대목에서 하윤이 저자 김상옥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북치는 여자인 은서는 누굴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작가가 만들어 낸 사람일까? 아니면 작가가 만났던 사람일까?
기쁨은 여럿이 나누면 배가된다고 한다. 반면 슬픔은 여럿이 나누면 나누는 만큼 작아진다고 한다. 가슴이 아파본 사람만이 가슴이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다. 맞다. 내가 아파보지 않고 남이 아픈 것을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위선이고 사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소설에서 처럼 내 아픔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세삼 느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인연의 끈은 이 둘을 맺어주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을 누르고 있었던 과거 만큼은 더 이상 짐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싶다.
오랜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을 만났다. 제법 두꺼운 책인데 작가를 따라가다보니 술술 읽혀지는 책이다. 조만간에 소설 속의 하윤이 썼다는 <하얀 기억 속의 너>라는 책도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