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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ㅣ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긴 장대위에 있는 앳띤 얼굴을 한 애가 한 손으로는 장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무언가를 가르키고 있다. 왜 이런 장면이 나오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이 장면이 어디서 나오게 되는지 알게된다. 서커스를 해서 먹고사는 원숭이 주인이 자기 어린애 둘을 4미터 높이의 장대에 묶고 바닥에 누워 발바닥에도 올리고, 나중에는 손바닥, 엄지손가락에도 올린다. 그런데 책 표지에 나오는 어린 애는 결국 비참한 신세가 된다. 거지왕초에게 억지로 끌려가게 되고, 손이 잘리고 장님이 되고 허리가 비틀려 결국 어린나이에 거지가 되어 버린다.
<적절한 균형>. 무엇이 적절한 균형인지는 모르지만 꽤 두꺼운 책인데 끝까지 가기 전에는 해피엔드로 끝나기를 바랬다. 정말 그렇게 끝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저자는 내 희망을 무참히 깨버린다. 결국 <적절한 균형>이란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희망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란다.
이 책은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가 파키스탄과 분리가 되는 과정부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그린 책이다. 내게 인도는 힌두교와 불교, 숫자 0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경제국) 국가중의 하나로 느껴지는 나라였지만 카스트 제도가 얼마나 뿌리깊은 지에 대해서는 정말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본 인도라는 나라가 내게 주는 느낌은 절망적이다.
불가촉천민. 카스트 계급 네 단계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짐승처럼 취급받는 사람들.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결국 국가의 폭력 앞에서, 그리고 권력자들의 부패 앞에서, 결국 모든 원죄를 뒤집어 쓴 희생양일 뿐이었다.
무 두질과 가죽 세공을 해야하는 차마르 출신인 이시바와 옴프라카시는 조카와 삼촌사이다. 이 들은 재봉기술을 배워서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려 하지만 국가의 폭력과 권력의 부패 앞에서 번번히 좌절하고 만다. 그러면서도 반항하지 못하는 이시바와 혁명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옴프라카시. 결국 불구의 몸이 되어 거지로 전락하게 되는 불가촉천민들이다.
마넥은 북부지방에서 뭄바이 대학으로 유학온 대학생이다. 그 자신도 자신의 삶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달리는 열차로 뛰어 든다.
디 나는 독립심이 강한 여성이지만 신혼 초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간다. 생활고에 시달린 그녀가 택한 방법은 살고 있는 아파트 일부공간에 하숙을 받고, 재봉사 둘을 고용해서 의류를 수출하는 업체에 납품하는 사업을 하기로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네 사람이 처음에는 잘 어울려지지 않는다. 그러다 가족같은 분위기로 소설은 이끌어 가지만 결국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절망이다. 아니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그들에게 세상은 너무나 냉정했다. 차라리 절망이었으면 마무리라도 제대로 할껀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하지 말아야 할 마넥에게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게 기회를 부여한다.
이 책에서 균형이라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나오지만 불가촉천민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더군다나 21세기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아직도 인도에는 불가촉천민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니 내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무자비한 공권력의 횡포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시절이 있었다면, 얼마전의 용산 참사는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래도 이 소설은 이시바와 옴이 거지가 되어 체념하는 1984년이지만 나는 2010년에 사는 것이니 무려 16년이 더 지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나를 더 울게 만든다. 쩝 재수 없게 소설이 끝나는 시점이 1984년이다.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감히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읽고 싶다. 표지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눈빛이 맑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쳐다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법이 1950년대에 이미 만들어 졌지만 아직도 법보다는 사회적인 관습이 지배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렇게 인도에서는 이방인은 모두 불가촉천민일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인도를 여행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당신 역시 불가촉천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말기 바란다. 왜냐면 인도에서는 이방인들만이 카스트의 네 계급에서 예외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절 망과 희망 사이에 저울을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